12월, 2024의 게시물 표시

감사, 그리고 새해 인사

  미국은 아직 2024 년 마지막날 , 뉴저지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 최근 다시 일드 심야심당을 보게 되었는데 , 일본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밤에 소바를 먹는 전통이 있는 걸 보면서 , 저도 올해 마지막은 일본식으로 소바를 , 새해 첫날은 한국인답게 (?) 떡국을 해보려고 , 덕분에 잘 하지 않는 외출을 했습니다 . 잠시 한인마트에 와서 소바 면과 떡 , ( 떡국에도 넣고 전도 부칠 생각에 ) 냉동 굴을 카트에 담아 계산대에 섰는데 , 지난 몇 년간 이 곳 물가도 너무 살벌해져서 오늘도 역시 또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결재하게 되었네요 . 이럴 때마다 덜컥 겁이 나고 무섭지만 , 이왕 샀으니 맛있게 먹어야지요 . 그래도 어쨌든 , 다시 새해입니다 . 마트를 나서니 조금 전까지는 가만히 있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어 , 일단 리프트 ( 우버 ) 를 부르고 , 개인적으로는 여러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지만 , 아직 2024 년이 가기 전에 , 무조건 고마운 인사를 남기고 , 새해 인사를 전해야 하겠다는 마음에 , 아이폰 메모장에 감사 인사를 적어 보고 있습니다 . 제 글을 계속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또 후원으로 마음을 전해주신 분께도 깊이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전합니다 . 새해 발걸음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아직 다 모르겠습니다 . 여기 계속 머무르게 되든지 ,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든지 어디서든 후원해 주시고 마음 함께하며 응원하고 기도해주신 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 글을 쓰며 생각나고 기억나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 많이 보고 싶다는 말 , 사랑하고 그리운 마음을 이 글을 통해 전해 봅니다 . 한국은 여러 일들로 소란하고 그래서 화 나고 슬픈 2024 년 12 월이었습니다 . 부디 2025 년은 그보다 더 큰 기쁨과 안녕이 , 여러분과 , 우리 퀴어 사람들 , 한국인 퀴어 기독교인 모두에게 있게 되길 바라고 또 기도합니다 . 저는 할 수 있는 대로 계속해서 우리 퀴어들과 퀴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글을 , 퀴어 목...

알다. 퀴어 그리고 예배,

  2024 년 마지막 날입니다 . 페이스북 알림이 떠서 확인해보니 , 제가 무려 11 년 전 12 월 30 일에 올렸던 글과 사진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 제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 ‘ 누가 내일 우리 교회 와서 기타로 나랑 예배 좀 해줬으면 좋겠다 .’ 이 때 무슨 일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 제가 그 당시 군목으로 부임했던 부대는 이제 막 편성된 신생 부대였고 , 제가 첫 군목으로 부임해 서울의 대형교회의 후원으로 부대 교회를 건축하게 되어 몸도 힘들고 마음도 한참 어렵던 시기였습니다 . 제가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보냈던 선교단체는 원래도 찬양과 집회로 이름을 얻게 된 곳이었고 , 그래서 찬양도 많이 하고 , 예배에 대한 것들을 많이 강조하고 훈련하던 곳이었습니다 . 그 때 제가 배웠던 것은 ,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행위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 혼자서 예배할 수 있고 , 그렇게 해왔지만 , 누구라도 같이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 글을 쓸 당시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 그리고 돌이켜보면 , 힘들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주기적으로 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 섬에서 군목으로 있을 때 , 저 글을 올렸을 때 , 더 큰 부대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 대학과 대학원에서 찬양하며 예배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 누구라도 함께 그렇게 다시 예배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 섹스와 예배를 비교하고 견주는 것이 불경한 생각일 수 있지만 , 둘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처음 만나 부부가 되는 과정을 ‘ 알다 ’ 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 히브리어에서 ‘ 알다 ’ 라는 의미의 단어는 성관계를 포함한 친밀함을 내표하고 있는데 , 섹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몸을 알아가며 ,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 친밀함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라면 , 예배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찬양도 하고 , 기도도 하...

미래를 품은 교회 A church that embraces the future 사무엘상 2:18~21 누가복음 2:41~42, 48~52 (12292024 주일예배설교)

  주일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성서일과를 확인하고 , 히브리성서와 신약성서의 말씀 , 복음서 본문을 읽으면서 , 정해진 본문이 2024 년 마지막 주일 , 2025 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읽고 나누기 적절한 내용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래서 오늘 주보와 PPT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 제가 정했던 이번주 설교의 제목은 ‘ 미래를 품은 교회 ’ 였습니다 . 제가 작성해 나누려던 오늘 설교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상 본문과 누가복음 본문에는 두 어린이가 등장합니다 . 사무엘상 2 장은 하나님을 향한 서원 기도를 통해 마침내 아들을 얻게 된 한나가 그 아들을 하나님의 성막에서 자라게 하려고 엘리 제사장에게 데려왔고 , 그래서 사무엘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막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며 , 누가복음 2 장 본문에서는 12 살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게 된 어린 예수가 부모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하지 않고 남아 있다가 그를 찾으러 온 그의 부모에게 ,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나를 찾으러 왔냐고 반문하는 내용입니다 . 이 두 본문은 각각 히브리 성서와 신약성서에서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조명되는 보기 드문 본문이며 , 그 구조와 내용이 서로 매우 닮아 있습니다 . 오늘 사무엘상과 누가복음 본문은 각각 이렇게 끝이 납니다 . 여기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 어린 사무엘도 주님 앞에서 잘 자랐다 .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 두 본문은 모두 각각 자신의 시대의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 또 감당하게 될 두 인물이 하나님 앞에서 잘 자라며 , 사랑받고 주목받게 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이 두 본문을 통해 교회는 한 사람을 품고 기르는 미래를 위한 공간이며 소망과 사랑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곳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나누고자 했습니다 . 그런데 지난 밤 , 우리는 정말 너무 충격적이고 참담한 사고의...

정말로 내가 나 같고 솔직할 수 있는, 주님의 세계

  2024 년 마지막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 성서일과에서 정해진 본문을 확인하고 , 설교 제목과 방향을 정하고 나면 , 마지막 찬양을 무엇을 부를지 고민합니다 . 주로 설교 내용과 해당 주차의 예배 방향과 맞는 곡을 고르기 위해 애를 쓰는데 , 이번주는 설교 내용과 살짝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 2024 년을 마무리하며 예배에서 함께하고 싶은 곡을 정했습니다 . 홍이삭 님이 만들고 부른 ‘하나 님의 세계 ’ 라는 찬양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 참 아름다운 곳이라 주님의 세계는 정말로 내가 나 같고 솔직할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내 의라 말할 수 없는 이 곳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홍이삭 님이 물론 이 노래를 퀴어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썼거나 , 퀴어 앨라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저는 이 노래가 진심으로 퀴어 기독교인들의 희망과 바람을 담고 있다고 여깁니다 .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를 때 저는 , 저의 바람과 희망을 담아 기도하기도 합니다 . 정말로 내가 나 같고 솔직할 수 있는 , 주님의 세계 한국 교회는 그 주님의 세계에 퀴어 사람들의 자리는 없다고 계속해서 말하며 쫓아내려 하지만 , 정작 주님의 세계 , 주님의 나라에는 퀴어 사람들이 가장 빛나고 높은 자리에 ,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 그래서 부를 때마다 , 정말로 내가 나 같고 솔직할 수 있는 주님의 세계가 우리들의 땅 , 이 세계에서도 속히 이뤄지게 되길 바라고 또 바라며 기도하게 됩니다 . 또 제가 그 일을 위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 저도 현실에서 그 세계를 , 그런 주님의 세계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 노래는 계속해서 이렇게 이어집니다 . 세상은 항상 말하네 그 길이 아니라고 곱디 고운 길이 있는데 왜 힘들게 사냐고 단순한 선택조차 내게 버겁기만 한 곳 그래도 나는 주님만 따르리 저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제 삶을 투영합니다 ....

성탄,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퀴어' 사람들 중에 평화!

  소란한 세상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날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의 성탄은 어떤 날인가요 ? SNS 를 살펴보면 올해는 성탄을 집회 현장에서 보내고 계신 분들도 많이 있으신 것 같고 , 또 예년처럼 친구 만나는 이야기 , 애인 만나는 사진 , 게이들의 성탄 섹속 , 번개 후기들도 여전히 많이 보였습니다 . 퀴어 기독교인들의 성탄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 성탄절이 되면 ,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의 반 타의 반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탄생에 대한 본문들을 찾고 , 묵상하고 , 또 글을 쓰게 되는데 , 올해는 그 여러 본문 중에 특히 ‘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 ’ 라는 구절이 계속 눈에 들어와서 하루 내내 되뇌며 묵상하고 있습니다 .   어떤 분이 ‘ 평화平和 ’ 에 대해 설명하며 , 한자로 화할 화和라는 글자는 각각 벼와 입을 의미하는 두 글자가 하나가 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 평화는 결국 모든 사람의 입에 벼 ( 쌀 ) 이 골고루 들어가게 될 때 이뤄지는 것이라는 표현을 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현대적인 의미애서 , 모든 사람의 입에 골고루 , 공평하게 들어가야 할 쌀은 결국 모든 사람이 같은 권리와 자격을 누릴 ‘ 인권 ’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그래서 지금 한국의 퀴어 인권운동의 방향이 차별금지법과 혼인 평등 ,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향해 있는 이유 또한 , 퀴어 사람들이 퀴어가 아닌 사람들과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한 것 , 결국 평화를 위한 운동이고 , 투쟁일 것입니다 . 미국에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로부터 자신의 또 다른 게이 친구가 망명 신청을 해서 절차를 밟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이렇게 자기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이유로 망명자 신분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 물론 이슬람권 어느 나라들처럼 ,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공개 처형을 당...

대림, 퀴어한 예수의 퀴어한 탄생을 퀴어하게 기다리는 시간 - 성탄 인사

  한국은 이미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성탄절로 넘어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 오늘도 글을 계속 쓰는 흐름을 멈추지 않으려고 , 한참을 , 몇 장 분량의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는데 , 부담 때문인지 , 졸려서 그런 것인지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 엎어 버렸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안 쓰고 자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 간단하게 인사 겸 몇 글자를 써보려고 합니다 . 저는 가능하다면 , 앞으로도 계속 ‘ 퀴어 ’ 이면서 ‘ 목사 ’ 인 사람이고 싶습니다 . 목사를 계속하기 위해 퀴어 정체성을 감추며 살고 싶지 않고 , 퀴어라는 정체성 때문에 목사라는 직업을 자의로든 타의로든 포기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그런데 어쩌면 , 내년에는 그 둘 중 하나 , 혹은 두 가지 선택을 모두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서 아직 퀴어이면서 목사일 때 , 기독교와 퀴어에 대한 글을 무엇이라도 남겨 놓자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 그런 이유로 ,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정말 일종의 자기 분석 작업처럼 , 글을 쓰고 나서 검수도 잘 안 하고 , 어떤 날은 뭘 쓰겠다 내용도 정하지 않은 채 일단 쓰자 ! 하면서 분량을 채워 계속 올렸기 때문에 , 글도 산만하고 , 부실하고 , 어떤 글들은 감정적이며 , 우울 전시로 가득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릴 때마다 읽어 주시고 , 관심도 가져 주시고 , 또 후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어 놀라기도 , 고마웠습니다 .   글은 일단 , 제가 퀴어이면서 목사인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 앞으로도 어쨌든 계속 쓰고 게시할 생각입니다 . 히브리 성서 ( 구약성경 ) 의 제일 마지막 책은 ‘ 말라기 ’ 인데 , 말라기의 제일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 ‘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 돌이키지 아니하면 ,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 제 글이 단순히 퀴어 , 목사인 저의 흔적을 남기는 ...

퀴어, 연대 그리고 거룩한 탄생 Queerness, Solidarity, and the Christmas 누가복음 1:39~45 (12222024 주일예배설교)

*이 글은 2024년 12월 22일 주일예배 설교를 재구성하여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신약성서의 사복음서 중 예수의 탄생 과정을 담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예수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방식과 관점은 굉장히 상반됩니다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 탄생 이후 , 예수가 탄생한 사실을 가장 처음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해 마태복음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 , 누가복음은 들에서 양떼를 치던 목자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들 중 하나의 예시입니다 . 오늘 우리가 이 설교를 통해 함께 살펴보려는 것은 예수 탄생 이전에 , 예수가 마리아를 통해 아기로 이 땅에 오게 될 것을 처음 전하는 소위 ‘ 수태고지 ’ 장면과 그 직후의 이야기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각각 예수의 탄생에 대해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미리 고지를 받고 알게 되는 과정을 전하고 있는데 , 그렇게 전달하는 방식과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 마태복음이 예수의 탄생을 어떻게 예고하고 있는지 먼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여기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 같이 살기 전에 ,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 . 요셉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 주님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 " 다윗의 자손 요셉아 , 두려워하지 말고 ,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들여라 .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

대림, 퀴어한 예수의 퀴어한 탄생을 퀴어하게 기다리는 시간 - 두번째 이야기

  뉴욕과 뉴저지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 제가 동부의 추위와 겨울에도 불구하고 , 이 지역을 좋아하는 이유는 , 이곳의 날씨가 한국과 놀랍게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 친구들과 연락을 하거나 SNS 를 살펴보면 , 한국에 비나 눈이 오면 , 여기도 그런 한국 날씨와 같이 하루 이틀 전후로 비나 눈이 옵니다 . 그래도 오랜 시간 이런 이 지역의 날씨가 나름 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 올해는 유독 , 그리고 부쩍 이런 날이 되면 한국 생각이 더 납니다 . 성탄절 직전 , 대림절 마지막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 대림절은 문자 그대로 예수가 임 ( 림 ) 하시는 것을 기다리며 고대하는 절기입니다 . 이 시간에 우리는 예수가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 예수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 예수라는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예수 탄생을 기다리고 , 그날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 “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니 ?” 선교단체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보내며 , 새로 만나게 되는 후배들에게 , 그리고 간사가 된 이후에는 새로 만나게 된 학생들에게 항상 이 질문을 했습니다 . 저는 제가 졸업한 학부와 대학원에서 간사도 했기 때문에 후배와 학생들 모두 신학생이었고 , 그래서 그들에게 이런 질문은 어쩌면 너무 쉽고 간단한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 이런 저런 대답을 하는 상대방에게 저는 다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 “’ 너에게 ’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니 ?” 지식으로 알고 있는 예수 말고 , 그 사람에게 , 그 사람이 믿고 , 이해하고 있는 예수는 어떤 ‘ 존재 ’ 인지를 파악하고 싶어 항상 했던 질문인데 , 사실 , 이 질문은 누구라도 막상 대답해보라고 하면 말로 한 번에 설명하기 민망하고 , 그래서 난감한 질문입니다 . 저도 말로 풀어서 대답하라고 하면 아마 잘 대답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질문을 항상 했던 이유는 , 신학생이라면 , 내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예수뿐만 아니라 내가 경험했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