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 퀴어 그리고 예배,

 2024년 마지막 날입니다. 페이스북 알림이 떠서 확인해보니, 제가 무려 11년 전 12 30일에 올렸던 글과 사진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누가 내일 우리 교회 와서 기타로 나랑 예배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 때 무슨 일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제가 그 당시 군목으로 부임했던 부대는 이제 막 편성된 신생 부대였고, 제가 첫 군목으로 부임해 서울의 대형교회의 후원으로 부대 교회를 건축하게 되어 몸도 힘들고 마음도 한참 어렵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보냈던 선교단체는 원래도 찬양과 집회로 이름을 얻게 된 곳이었고, 그래서 찬양도 많이 하고, 예배에 대한 것들을 많이 강조하고 훈련하던 곳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배웠던 것은,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행위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혼자서 예배할 수 있고, 그렇게 해왔지만, 누구라도 같이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 글을 쓸 당시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힘들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주기적으로 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섬에서 군목으로 있을 때, 저 글을 올렸을 때, 더 큰 부대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대학과 대학원에서 찬양하며 예배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누구라도 함께 그렇게 다시 예배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섹스와 예배를 비교하고 견주는 것이 불경한 생각일 수 있지만, 둘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처음 만나 부부가 되는 과정을 알다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알다라는 의미의 단어는 성관계를 포함한 친밀함을 내표하고 있는데, 섹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몸을 알아가며,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친밀함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라면, 예배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읽으며,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알아가는 시간과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알다라는 단어를 공통 분모로, 섹스와 예배가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렇게 직설적인 표현을 해 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예배할 때, 예배는 그만큼의 친밀함과 간절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형식과 전례가 어떤 방식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간절함을 가지고, 그만큼의 친밀함을 바라고 또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예배를 인도는 저도 항상 그런 책임감을 느낍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온전히 경험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교감하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예배이며, 예배인도자는 그런 예배를 위해 언제나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편으로는 예배인도자, 목사로서 제가 아닌, 예배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갈망,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매주 예배인도자로서 인도하는 예배나 개인적인 기도나 말씀 읽기에 더해 글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말 더 예배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누구라도 함께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가 찾아온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외로움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정말 알고 싶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고, 하나님의 위로나 계획을 너무나 절실히 깨닫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예배가 하고 싶습니다. 함께 예배할 사람이 누구라도 있게 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슬픔을 나누는 예배를 넘어서서 슬픔이 이해와 위로로 바뀌고, 그래서 희망을 가지게 되고, 힘을 얻고, 그렇게 계속되는 예배가 삶의 시간 속에서 기쁨으로, 축제로 바뀌어 예배 또한 그 기쁨과 축제가 되는 것을 바라고 원합니다.

퀴어인 목사로 제 삶의 방향을 인식하면서 제가 언제부터 꿈꾸고 희망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여러 퀴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찬양하며, 기뻐하기도, 울기도 하며 같이 예배하게 되는 것,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그런 순간을 언제라도 경험하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전례에 따라 성찬의 떡과 잔을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찬양인도자의 인도와 여러 악기, 전자음, 기타와 드럼, 큰 소리의 찬양과 박수, 춤과 환호성, 자유로운 기도, 클럽과 같은 조명과 분위기가 공존하는 그런 예배를 수많은 퀴어 사람들과 함께 드릴 수 있게 된다면 그것도 정말 재미있겠다, 정말 신나겠다, 정말 기쁘고 놀랍겠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자주 해봅니다.

한국인 퀴어 공동체, 퀴어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통해 그런 날을 경험하게 될 날이, 있겠지요.

2024년 저의 첫번째 기도제목은 결혼하고 싶다였습니다. 퀴어 친구의 결혼 주례를 해보기도 하고, 주위에도 오래 된, 사실혼 관계와 같은 커플들이 여럿 있지만, 정작 저는 스님이 아닌 목사인데도 제 머리를 깎지 못해서, 함께할 사람을 결국 올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함께 서로를 알아가며, 하나님을 알아갈 사람, 만나게 될 날이 있겠지요.

새해를 하루 앞둔 오늘, 다시, 예배가 하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페이스북이 알려준 오래 전, 하나의 글, 한 장의 사진이, 다시 그 기도를 잇게 하는 그래서 다시 글을 쓰게 하는,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 슬픔과 분노가 가득한 이 때, 여러분 개인의 삶과 영혼은, 부디 안온하실 수 있기를, 누구라도 함께 서로 알아가며, 서로 짐을 나눌 수 있는 이들, 곁에 있게 되시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한 해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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