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살을 먹었습니다...만,
아무것도 한 것도, 이룬 것도 없는 한 해가 다시 채워지고,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된 8월이 지났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두 번째 생일이 있던 달이었습니다.
작년 4월에 돌아와 지금까지 시간들을 돌아보면 딱히 성취나 희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의 하늘은 여전히 막혀 있고, 그래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시간을, 여전히,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글도 시작부터 끝까지 또 이런 자조섞인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기에, 힘들고 보기 불편하신 분들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아직 목사이긴 합니다만, 교단에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단을 떠난다고, 사임을 청한다고 해서 한 번 받았던 목사 안수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지만, 제가 교단을 떠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여전히 교단/노희 원로인 아버지를 생각하면 선뜻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면이 있어 그저 가만히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기존 교회로 다시 들어가 목사로 다시 일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블로그 제목처럼, ‘퀴어’인 그대로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목회는 거짓이고,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올해부터는 일도 하고, 월급도 받으며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하게 될지도 사실 모르겠습니다. 제 계약서에 따르면, 내년 2월까지가 정해진 계약기간이고 그 이후의 일들을 장담할 수 없으며, 전에 배우고 취득한 장례지도사 일도 결국엔 일을 구하지 못해 어영부영하고 있던 것이라, 내년이라고 새로 일을 구할 수 있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저는 여전히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 시간을 계속 통과하며, 쓸데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목사라는 감각과 목사로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 또한 점점 더 무뎌지고 있습니다.
목사로서도 답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무능한 가운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 삶이 언제까지 얼마나 지속될지 저도 알 수 없지만, 딱히 어디 쓸모가 있는게 아니라면 굳이 계속 이어가는 것이 맞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죽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그럴 용기는 없는 사람입니다. 잘 모르는 분들도 많으실텐데, 죽음에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그 결정을 내리고 선택하신 분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죽을 용기를 살지 그랬냐는 말처럼 가벼운 말도 없는 것이, 죽음을 성공할 용기는 정말로 대단한 용기이고, 그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분들은 자신의 삶에서도 그만큼의 용기와 힘을 이미 충분함 그 이상으로 내고 있었던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삶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퀴어’,‘목사’,‘퀴어목사’로서 저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계속 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사람으로서 어떻게 삶을 지탱하고 이어갈 것인지를 생각이나 성찰이 아닌 ‘계산’하며 살고 있는 중입니다.
몇 달 전, 너는 연애할 생각이 정말 없냐는 친구의 질문에, 아주 티발놈다운 답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으로 가기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던 몇 개의 신용카드가 있고, 그 카드와 지금 내 월급을 합치면, 그럭저럭 한 달을 살 수 있는 정도라서 다른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데 무엇을 소비할 수 없고, -그래서 연금이나 투자, 보험까진 생각도 못하고 있고- 어차피 섹스는 이미 (아직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히 잘 하며 살고 있으니, 딱히 연애가 급하진 않다는 것이 제 답이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다음의 말까지 전하진 않았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 관계적 측면에서도 원래 저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불안이나 불편함보다,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품고, 그것 때문에 마음을 쓰며, 소모하게 되는 불안/불편한 심리 상황-역동-을 굳이 초래하고 싶지 않기에 혼자이기를 결정하고 선택했습니다. 외적인 면에서도 지금은 누군가 저를 주목하고 좋아할만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누구를 찾고, 만나고, 연애하는 것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친절은 그저 친절이며, 나이가 들면 들수록, 특히 나이 많은 게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체파악이어야 한다는 명제도 새삼 기억하며 되뇌고 있습니다.
연결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그나마 조금 늘어난 것이 있다면, (교회를 중심으로) 몇몇 새로운 관계들이 형성되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그 단순한 관계들조차 성공적이고 건강하게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관계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관계에 있어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천성과 기질이 지난 수년간의 세월로 인해 더 강화된 상태인데다, 역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주목받을만한 어떤 것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신 실수와 부끄러운 일/말이 더해지고 있는 것 같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다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그나마 지워졌던, 원래도 한참 모자랐던 감각들을 깨우며,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말을 하고 있는지, 끼어야 할 때 끼고, 빠져야 할 때 빠지는 것을 잘하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저 자신에게 스스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나 독일 영화 ‘신과 함께 가라’는 모두 같은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도자였던 주인공들이 어떤 계기로 속세로 내려와 세상을 경험하지만, 결국 그곳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다시 수도자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저야 당연히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대단한 깨달음과 영성을 품고 있거나, 수도원 영성과 잘 맞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조차 저와 딱 들어맞다 할 수 없지만, 뉴저지 차고 뒤 1베드룸이라는 골방에서, 한국이라는 세상으로 다시 내던져진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거기 혼자 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더 하게 됩니다.
블로그에 글을 업로드하는 빈도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계속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언제가 어느 때에는 좋은 일, 소소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을 날이 언제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한 가지, 하나님과 퀴어 정체성만은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니, 결국에는 그 둘만 남아서 뭐가 되도 되든지, 아니면 그 둘로 인해 더 심각하게 무너지고 망하게 되든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올리는 글인데도, 아주 일관되게 이번에도 횡설수설, 되지도 않는 문장으로 글을 채우고 업로드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의 배설이 담긴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오늘의 제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그 하나만으로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고개를 숙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생일 전후로, 하나님을 향해 생일 선물을 요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사람들이 주는 선물 말고, 하나님이 선물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기도하는 것인데, 당연히 그 몇 년 동안, 뭐라도 그럴듯한 ‘하나님의 선물을 받거나 경험하진 못했습니다. 올해는 받아낼 수 있을까요? 이미 열흘 이상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그 어떤 음성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다립니다. 다음번 글은 그 간증이 될 수 있기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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