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예수
얼마 전부터 로뎀나무그늘교회에서 기독교 기초신앙과정을 인도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이름 그대로 교회에 이제 막 출석하기 시작한, 기독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공동체가 믿고 있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가르치고 전달하기 위해 시작된 것인데, 지금 저는-이걸 저에게 맡겨 주신 교회 임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제가 이 과정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농반진반) 계속 자책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여기에 관심을 가진 기존 교인들과 최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분들, 교회에서 초신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모여서 모임을 구성하고, 기존에 출판 되어있는 어떤 책이나 교재가 아니라 주마다 해당 주제에 대한 글을 정리하고, 써서, 공유하며 그것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문제는, 매주 글을 쓰고 모임을 준비하면서 제가 저의 역량의 한계를 뼈저리게 대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안 되는데 잘난 척을 해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호기롭게 여러 책을 뒤적이고, Chat GTP와 Gemini의 도움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매주 그 글들이 맘에 들지 않고, 분량 조절도 실패하고 있어서, 결국 어려운 말들의 잔치가 되어 버린 똥 글로 인해 이 과정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만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난주 모임 주제는 ‘예수’였는데…애초부터 논리적이지 않은 것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나누며 설득시켜 보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을까요?
모임을 위해 글을 준비할 때부터, 무척 부담이 많이 되었는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역시 너무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쓸데없이 너무 긴 글을 도무지 더 줄일 수도 없어서, 그렇게 주제 글을 장황하게 준비했지만, 막상 모임에서는 내가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신 예수가 왜,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설명하는데, 저부터 저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완전히 망했다는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저에게도 예수는 그리스도(구원자)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내 믿음이 왜 타당하고 옳은 것인지를 전하고 설득하는 것은 목사가 된 지 벌써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논리적이지 않고, 어떤 부분은 다만 이해가 아닌 수용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이 자칫 상대방에게는 이 믿음은 ‘완전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 염려되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더 방어적이고, 그래서 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장황하고 정리되지 않은 글로 나타나고, 맥락 없는 토론을 하면서, 정작 전해야 할 것을 잘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고통스럽습니다.
(비단 이렇게 예수를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는 내가 좋은 것을 다른 어떤 사람도 좋다고 느끼고 공감하며 참여하게 하는 것에 큰 소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애초에 동원하고 선동하는 일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단체 생활을 꽤 오래 했고, 국내와 해외 전도여행도 참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전도는 저에게 정말 무섭고 두려운(?) 활동이었습니다. 학부 시절, 명동에 있던 높은뜻숭의교회를 다닐 때는 몇몇 사람을 중심으로 2시 청년대학부 예배 전에 명동 거리에 나가 노방 전도를 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걸 참여는 하면서도 매주 참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여행 때도, 노방전도를 다닐 때도 일대일 전도를 주도하기보다는 중보기도나 방문, 관계 중심적 사역에 집중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 제가 또다시 누군가에게 예수를 소개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분명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이 예수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이해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저는 아마도 ‘큰 목사’가 되기에는 애초부터 틀려먹은 재목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 기적을 베푸신 예수는 어쩌면, 애초부터 납득시키고 이해시켜야 할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예수를 사랑하고 있는 만큼 다른 어떤 사람도 예수를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열망합니다. 그래서 저의 예수가 조금 더 완전해 보이고, 제법 멋지고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저는 제 욕심과 욕망, 부족함과 한계를 계속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모임을 진행하면서, 저는 제가 마치 아테네 사람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예수를 전하려고 했던 바울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시대의 그리스 철학을 잘 알고 있었고, 히브리 성서 또한 모두 꿰뚫고 있었던 바울이 그 당시 세계의 모든 지식과 지혜가 다 모여 있었던 아테네를 방문해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어쩌면 그 또한 큰 흥분과 희열 속에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가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그들이 믿고 있는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아테네의 바울은 완벽하게 실패했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거기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저도 어쩌면 바울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이 예수를 조금 더 잘 전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함께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이 시간을 통해 기독교 공동체에 마음을 두고, 또 믿음의 여정을 이어갈 동료들이 될 수 있기를 그저 기도하며 바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저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것 또한, 이 과정을 제가 아닌 성령께서 이끄시도록 주도권을 내놓는 단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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