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기다림에 평화가 있기를…
오늘 글은 기한을 맞춰 과제 제출을 해야 했던 학생 시절 그 어느 때와 같은 마음으로 일단 적어보고 있습니다. 성탄절 전에, 그래도 글을 하나 정도는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저 혼자만의 부담감을 가지고 무엇이라도 글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다림’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달력에서부터
한 해의 시작을 ‘기다림’으로 열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성탄절 이전에 4주간을 지켜 행하는 대림절이며, 예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신약성서의 기원 또한 ‘기다림’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배치 순서
그대로 복음서가 먼저 기록되고 유포된 것이 아니라, 서신서, 그 중에서도
바울 서신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자신의 생각과 신학을 교회 공동체를 향해 문자로 된
기록으로 남겨둬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결정하게 된 배경 또한 그 중심에 ‘기다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개별 교회에 편지를 기록해 발송하던 시기,
그래서 그 서신들이 신약성서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당시 교회 공동체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면,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예루살렘 회의로 예수의 복음이 유대인들을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세계로 확산되었을 때, 바울을
비롯한 당시 기독교 공동체 지도자들이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의 재림이 자신들의 죽음 이전에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바울 서신들에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 사람들을 향해
굳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보다 독신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권면하기도 했으며, 사도행전에서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함께 나누기도 하고, 같이 살기도 했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기다림은 정말 무한정으로 길어지게 되었고, 공동체 내부에서도 예수의 재림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이 공동체와 함께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으로 나가서 일상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갈팡질팡하게 되었고, 바울은 그런 기독교인들을 향해 무엇이라도 답을 해줘야 할 상황에 직면하여 오늘 우리들이 알고 있는 여러 서신서들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은 기다림으로 시작해,
기다림을 유지하며, 어떻게 잘 기다릴 것인지를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이 믿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기다림이 때때로 정말 쉽지 않고, 고통을 수반하며, 희망이 아닌 절망을 경험하도록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다림 이후의 결과에 대해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하며, 그래서 그
기다림이 지속될수록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바울을 비롯한 신약성서의 여러 기록들이 그 기다림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얼마나 대단한 보상과 상급이 주어질 것인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조차 결국 그들이 기대했던 예수의 재림을 보지 못했으며, 기다림의 끝을 맺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희망을 만들고, 그 희망이 결국 기적과 복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과 예측 따윈,
허황된 설교와 연설 따윈 하지 못하겠습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저의 기다림이, 이번 한 해의 기다림들과 그 이전의 기다림들이 딱히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결과와 열매를 볼 수 있게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다림은,
올해도 실패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와 함께 또 다시 성서가 전하고 있는 기다림의
완성, ‘성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고, 또 어떤 결정들을 내려야 할까요? 저는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탄이 지난 후에도, 저는 계속 기다리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렸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의 믿음의 전부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기다림으로
인해 여러 번 낙심하고 또 낙망을 하며, 결국 그 기다림의 끝에서도 원하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죽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예수 믿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도 예수는 그런 존재입니다.
올해의 기다림 또한 실망으로, 낙심과 낙망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조금 더, 저의 기다림을 이어
가기로 결정해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저에게 가장 큰 성탄의 의미이며, 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 결정과 결심들과는 별개로,
그래도 그 기다림은 참 쉽지 않고 어렵습니다. 힘이 빠집니다. 그렇게 없는 힘을 가지고, 마른 걸레를 짜고 있는 것처럼, 여기 글을 남겨 봅니다. 그저 베들레헴에 나신 그 아기 예수가, 저에게도 별이 되어 다시 빛나며, 평화와 기쁨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손 모아 기도해
봅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지
1년이 막 넘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어떻게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때에,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기도 합니다. 새롭게 정해지는 것이 있게 되면 계속해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모두의 기다림에 평화가 있기를…복된 성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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