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일상...
이번주는 아빠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 당회에서 다음 달에 은퇴하시는 아버지의 퇴직금을 결정했다는 어머니의 문자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최저임금 기준으로 직장인의 1년 연봉보다 낮은 금액의 퇴직금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어머니의 한탄과 한숨을 들었습니다. 교회 헌금을 횡령했다가 기나긴 재판 끝에 교회를 떠나며 수억 원의 전별금을 챙겨 나갔던 그 지역 대형 교회 담임, 아버지의 신학교 동기였던 목사님도 떠오르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서울 어느 지역의 대형교회 목사님은 교단 총회장 신분으로 교회 권사님과 모텔에 갔다가 나오는 것이 들켜 쫓겨나게 되었는데 역시 수억 원의 전별금을 받아 나왔던 것 또한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연금을 담보로 그동안 대출한 빚이 이번에 받기로
한 퇴직금보다 적다며 걱정하시는데, 애초에 저도, 저희 가족도 그 교회에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족한 건 주님께서 갚아 주시지
않겠냐며, 주님의 보상을 기대하자는 말로 제법 목사 같이(?) 어머니를
위로하며 통화를 마쳤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워졌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가게 된 그 교회에서
20여년이 넘게 목회를 하신 아버지가 이제 다음 달이면 그 일을 내려 놓으시게 됩니다. 명절 때 아버지는 저를 역까지 바래다주시며 너도 이제 정신 차리고 하려는 일들-퀴어 사역-
정리하고 내년에 그 지역에 다른 교회-아버지 친구인자 아버지보다 1년 늦게 은퇴하는 목사님의 사역지-에서 일할 생각하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셨습니다.
뭘 시작도 하기 전에 정리부터 하라는 말을 들었던 그 때 그 걸음 또한 상당히 무거웠는데, 이제 정말 아버지의 은퇴가 눈 앞으로 다가오니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저녁에는 무화과로 잼을 만들었습니다.
그 며칠 전, 마트에서 무화과 한 상자를 사왔는데, 무화과는 빨리 무르고 상하는 과일이기 때문에 얼른 몇 개를 베어 먹고 냉장고에 두었다가 스테비아와 설탕을 섞어 뭉근하게 졸였더니
제법 괜찮은 맛이 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빵을 굽고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었더니 비로소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고, 그 무화과 잼 하나가 디딤돌이 되어 일상에 대한 생각과 묵상을 이어갈 아주 약간의 동력이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주에는 10월 큐앤에이 월례 찬양예배에서 설교를 합니다. 예배 준비를 위해 설교 본문을 미리 알려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잠깐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해당 주간의 주일 성서일과 본문인 요엘서의 말씀을 본문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이 요엘서의 본문과 함께 설교 본문으로 고민했던 것은 10월 둘째주일 성서일과
본문이었던 예레미야 29장 1, 4~7절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오늘 이 글을 기록하고 있는 동기이기도 하고, 또 제가10월 둘째 주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붙잡고 곱씹어보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본문의 내용은 예루살렘이 유린당하고 남유다가 멸망한 직후, 히브리 사람들을
향해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권면과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빌로니아로 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말한다. 너희는 그 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여라. 과수원도 만들고 그 열매도 따 먹어라…”
이어지는 말씀이 계속 있고,
이 본문을 통해 전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 많지만, 간략하게 본문에 대해
설명하면,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을 당한 이후,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바빌로니아에 대항해 싸우거나 독립운동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람들은 이제 막 낯선 외국 땅에 포로와 노예의 신분이 되어 끌려왔고, 도망친다고
해도 돌아갈 나라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패배감과 두려움 속에, 깊은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 일어나서 맞서 싸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시간,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내 보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그런 일상, 패배감과 두려움,
절망과 공포로 가득한 그 일상 속에,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이 그들의 일상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말해 주십니다.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들이 지금은 그 상황을 직면하고 마주해야 할 시기일 뿐이며, 그렇게 그들이
그 어둠의 시간을 통과하고, 또 강대국의 죄가 가득 차 심판의 어느 때가 차게 되면, 하나님은 어김없이 그들을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 고통과 어둠의 시간을 보내야 할 당사자에게 그것은 절망이며
고통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들의 일상을 이어갈 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절망과
고통을 같이 짊어지고 또 함께하시는 존재입니다.
제가 이 한주간을 보내며,
또, 한국에서의 시간을 새로 보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붙잡고, 그래도 계속 살게 되는 근거가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예레미야의 말씀을 저의 삶으로, 저의
일상으로 들이고, 또 새로운 힘을 내어 요엘의 시선을 해석하며 말씀을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내려고 합니다.
자세히 나눌 수 없지만,
저는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와중에 어머니가 어쩌면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어떤 상황을 겪게 되셨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삶은 늘 쉽지 않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이사를 도와주던 친구가 저를 놀리며, “또 이런 것들 한구석에서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릴 거지?” 하고 말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ㅎㅎ 친구의 말이 틀린 것이 없어서 반박은 못하고 씩씩대기만 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지금껏 게시하는 글들의 대부분이 저의 실패와
우울을 전시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글을 쓰고 있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또 지금 저의 삶이며 일상이기 때문에, 딱히 다른 소재가 없음에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늘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깔 나는 퀴어 목사의 삶과 사역을 공유하게 될 날이
있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럴 일이 절대 없을 확률이
정말로 더 크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어느
퀴어 목사의 삶에 대한 기록을 다만 얼마라도 계속 남겨 보겠습니다.
아, 다음 달부터는 사는 게 조금 더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그동안 받아왔던 구직촉진수당이 이번 달로
종료되었고, 무엇이라도 얼른 돈을 벌 일이 생기지 않으면, 일상이 더
형편없어질 것 같네요. 사는 동안은 살아야겠죠. 소식 계속 전하겠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관심 가는 분 있으시면 다음주에 있을
큐앤에이 월례예배에 놀러 오세요. 짧지만, 제가 설교도 하고, 축도도 합니다.
큐앤에이 월례 찬양 예배,
<컬러풀: 엣지 오브 워십> 10월 예배
10월의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셔도 됩니다.
당신의 존재가 이미 축복이며, 함께하는 자리가 은혜가 될 것입니다.
2025.10.30(목)
저녁 7:30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장소는
신청자에게 개별 안내)
신청:
https://forms.gle/cU5YRYGTiEWg43QJ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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