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거룩하게, 읽다가 뼈 아프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 있었는데, 미국 루터교회 소속 여성 목사인 나디아 볼즈웨버 Nadia Bolz-Weber어쩌다 거룩하게라는 책이었습니다. 매대에 서서 잠깐 책을 훑어보다가 저자까지 구글링을 해보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왔지? 라는 생각이 들며 무척 흥미로워졌습니다.

나디아 볼즈웨버라는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해 보시면, 혹은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읽게 되신다면 알게 되실텐데, 그의 몸은 크고 화려한 타투로 가득하며, 아주 큰 장신에, 취미로 크로스핏을 계속 하고 있는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진과 인물 소개 초반만 보고 이 사람은 당연히 찐부치 누님(레즈비언, 외향적, 활동적, 주로 단발 숏커트와 바지 착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남자와 결혼한, (적어도) 바이조차 아닌 헤테로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의 소속 교단이 다른 무엇도 아닌 루터교라는 것에 두 번 놀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선입견들을 돌아보고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크로스핏을 즐기며, 온 몸이 문신으로 뒤덮여 있는 이 이성애자’ ‘루터교회여성 목사는 당연히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왜 퀴어가 아니지?’, ‘이런 사람이 무슨 사연으로 어쩌다 루터교 목사가 된 거지?’, ‘한국에서 누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이 책이 번역될 수 있었던 걸까?’

와 같은 질문과 함께 책을 읽어가며, 제가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것은 목사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믿고, 일하고, 살아야 하는가? 같은 생각들이었습니다.

나디아 볼즈웨버는 다양한 인종과 성별 배경의 퀴어, 환자, 중독자, 장애인, 보수주의자, 성폭력 피해자, 자살유가족, 정신병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목회했던 경험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볼즈웨버 또한 그렇게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여전히 중독으로부터 회복중이고, 정제되어 있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며, 때론 경솔한 결정과 말들이 그 자신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그리고 볼즈웨버는 그런 그의 경험들을 꾸미지 않고 가감 없이 책 속에 풀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완전하지 못한 목사는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지 않으면서, 동시에 후회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배우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 완전하지 않은 목사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자신이 함께해야 할 곳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배우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볼즈웨버는 그야말로 기깔나게 자신의 목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디아 볼즈웨버는 목회자로서 무엇이라도 특별한 영적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밝힙니다. (사실 이 부분이 지금의 저에게는 일종의 안도와 위안을 가장 크게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어떤 훈련이나 인위적인 시도보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그의 이웃들과 교회 교인들과 함께하면서 배우고, 실수하고, 익히며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감정은 이런 목회자의 삶’, ‘목사라는 존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예수 잉태를 예고하며,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에 대해 알립니다. 예수의 죽음과 승천 이후, 예수의 제자 된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런 임마누엘, 하나님을 나타내고 보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목사의 역할은 바로 이런 임마누엘, 서로와 함께하며 하나님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목사가 완전하지 않아도, 서로가 언제나 완전하지 않아도, 우리는 슬픔 가운데 있는 이들 옆에서 함께 슬퍼하며, 연대가 필요한 이웃들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서로에게 임마누엘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그럴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교회 공동체로부터 역할을 위임받은 존재가 바로 목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교회 내에서 교인들의 위에 존재하는 상위 계급, 권력자가 아니며, 누군가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 거기 함께해 주는 존재로서 역할과 기능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 뿐입니다.

오늘도 이 글을 통해 나디아 볼즈웨버와 그의 책 어쩌다 거룩하게를 소개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런 목사라는 존재와 역할에 대한 저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 속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볼즈웨버는 죽음을 애도하는 현장에도, 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순간에도 목사로서 함께합니다. 그는 자살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그의 장례식을 집례하며 유가족을 위로하고, 때때로 총기 난사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참사가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차 답을 구할 때,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과 위로를 구하며, 그들을 위한 성서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통해 저는 교회의 본질과 목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외형은 확장되었으나 그 외형을 지키기 위해 본질을 놓치고 있는 수많은 교회들. 그래서 사람들을 공동체로부터 내쫓고, 증오를 부추기며, 율법을 강요하는 것에 열심을 내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목사 무리들. 그런 가운데 퀴어이기 때문에 목사로서 함께할 수 있는 그 어떤 공동체도 찾지 못하고 있는 오늘, 저는 또 목사로서 저의 존재 여부에 대해, 앞으로의 저의 삶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교회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죄인들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교회,

그런 시대를 살며, (이상한 기준 속에 죄인으로 분류된) 사람이며, 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목사는 시대와 사회도, (이 나라의) 교회 그 어디에서도 그런 목사를 필요로 하지 않아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번 달은 제 생일이 있던 달입니다. 미국식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속 고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눈 앞에 닥친 경제적인 문제들-다음주까지 월세 3개월 선세, 다음달 카드 값과 대출금 납입, 구직 등-과 곧 다가올 아버지의 은퇴, 부모님의 노후, 부양에 대한 책임감 등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내년을 어떻게 살게 될까요? 경제적인 부분만을 생각하면, 목사로서 저에게 가장 최선의 방법은 친구와 인맥을 동원하기도 하고, 두루두루 인사도 다니며, 대형교회 입사를 노리는 것입니다. 대형교회가 녹록하지 않으면, 어디 웬만한 중형교회, 제가 속한 노회 지역의 큰 교회 정도는 어쨌든 들어가서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퀴어 정체성을 숨기고, 어쩌면 원하지 않는 설교와 선동도 하고, 또 어쩌면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것이 아니면 장례지도사로 잘 취업해서 조용히 돈을 벌며 적당히 잘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럼 퀴어로서 제 자신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고, 많이 벌진 못해도 당장 생활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쁘지 않죠. 다만, 다시 목사로 어디든 서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생활은 할 수 있으니 역시 이것이 최선일까요?  

나디아 볼즈웨버와 미국 신학교에서 만났던 제 퀴어 친구 목사들이 그들의 존재 그대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어서, 그들의 공동체 안에, 함께, 목사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부럽고, 샘이 나고, 아픕니다. 나이가 또 먹었으니, 어서 그만 고민하고 결정을 해야 하겠습니다.

어쩌다 성스러운 Accidental Saints(Finding God in all the Wrong People) 볼즈웨버의 목회와 삶을 염탐하며, 저의 그 어쩌다는 무엇일까? 언제일까? 생각하며, 어지러운 글 하나를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견/문의사항 DM

Bluesky: https://bsky.app/profile/ryaninnj.bsky.social

Twitter: https://twitter.com/newshin1983

 *논쟁이나 욕설이 목적이 아닌 문의나 (반가운) 안부 인사를 담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블루스카이 DM은 언제나, 누구나 환영합니다. 




돈이 많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Venmo: @RyanJShin

하나은행 18391029397907 신**

카카오페이 https://qr.kakaopay.com/Ej720JZAu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두 번째 커밍아웃, 그리고…

“격려를 받겠습니다.”

다음주면 아파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