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 날

 생일이 지났습니다. 덩달아 미국식으로도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었다는 것이, 여러가지 생각이 오고 가게 합니다. (한국식으로)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1월부터 8월까지 벌써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을 결정하고, 정말로 돌아오게 되었고, 부모님께 재차 커밍아웃을 했고, 서울에 집을 구하고, 새로운 직업 교육도 받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몇 년을 보냈던 시간만큼 시간이 지난 것 같이 느껴지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 미국에서도,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구체적인 진로와 길이 정해져 있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제가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정확히는 퀴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려는 목사로서 한국에서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글을 쓰고, 성서 해석을 나누고, 전하지 못하는 설교를 다만 문자로 남겨두는 정도입니다. 그 일이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더 성실히, 열심히 해야 할 텐데, 그런다고 밥이나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라도 새로운 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의심과 회의가 저를 방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이 일정 부분 섞여 있는 굉장히 그럴듯한 핑계입니다만, 사실 가장 큰 원인은 저의 게으름입니다.

나이도 한 살 더 먹은만큼, 영적인 일에도,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월에 귀국하면서, 당분간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바로 운동을 시작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몸을 만들고, 살도 좀 왕창 뺀 다음 누구라도 만나야 하겠다고 계획했지만, 8월도 저물어 가는 지금까지 운동을 위해 몸에서 어디라도 까딱조차 안하고 있으면서, 정작 소식을 전하고 만나고픈 사람들과 만나려는 것은 뒤로 미루고 망설이기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장례지도사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나면, 교대 근무로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에 대한 대단하고 거룩한걱정과 함께,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면 앞으로 영원히 목사로 밥 먹고 살진 않고, 이중직이 아닌 그저 장례지도사로 전직이 시작되는 첫걸음일 것 같다는 뭐 그런 아주 엄청나고 대단한염려로 이력서를 내고 일자리를 구하는 일에 아직까지 무척 소극적이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기도 합니다.

명색이 목사인데 잘 기도하지 않고, 성서도 자주 읽지 않고, 독서도 손에서 놓아버린 영적 분야에서도 참 많이 게으른 시간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식으로) 제 삶에서 오늘부터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생일을 맞이해 하나님께 두 가지를 선물로 달라고 기도했는데, 역시나 둘 모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럴 때, 어쩌면 신앙의 근육이 또 한 번 이렇게 자극을 받고, 아프고, 단련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라고 생각하면, 조금 괜찮으려나요?

어쨌든, 썩 좋은 출발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살 더 먹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얼른 운동도 시작하고, 식단도 하고, 건강검진도 받고, 구직도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하면서, 기도하는 것, 독서하는 것에도 더 열심을 내야 하겠습니다.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면, 그래야 하겠죠?

글을 쓰는 것에도 더 부지런과 열심을 내야 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더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동안 각종 SNS를 통해 축하를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매월 연체가 염려되는 카드 값과 당장 얼마 뒤에 있을 다음 3개월어치 집 계약 갱신과 선세 납입, 치과 진료 비용이나 이런저런 생활비를 걱정하며 정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상들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조금씩 다시 시작하고 있는 이 일상들이 순간순간 고맙습니다. 그 순간순간 오늘의 축하처럼 반짝이며 저와 함께해 주시는 많은 분들을 보고, 만나게 되고, 그 만남들을 통해 그래도 하나님을, 여전히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만큼은 사는, 나이 값 하면서 살아보는 새로운 한 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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