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오늘은 일종의 실험 겸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장례지도사 교육 마지막 과정의 일환으로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실습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5월 중순부터 시작했던 교육은 이번주까지의 실습을 끝으로 마무리되고, 토요일에 있을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과정까지 마치고 나면, 저는 이제 장례지도사 국가 자격증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협회 자격증을 취득하게 됩니다.
교육 과정은 제법 유익했고, 여러모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우게 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강서구에서 교육장소인 종로 5가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아침 지옥철, 버스 환승 끝에 교육 장소에 도착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힘들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그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군목이었을 때도 새벽 예배로 하루를 시작해 화요일부터 주일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것을 반복하긴 했지만, 그 때는 부대 안에 있는 관사에서 지내며 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고, 훈련이나 행사 기간을 제외하면 고된 노동(?)이랄 것을 경험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며 보게 되는 아침 광화문의 쾌청함이 싱그럽고 기분 좋기는 했지만 그 잠깐의 즐거움이 하루의 고단함을 다 잊게 만들지는 못했고, 매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며,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데 그동안 전에 제가 교인으로 만났던 그 한 분 한 분, 어릴적 대학청년부에서 만났던 누나 형들은 교회 평일 모임이나 행사들을 어떻게 섬기고 함께 했던 것인지 새삼 그들의 위대함과 고마움을 깊이 느끼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이 지나고, 종로에서 이론과 실기 과정을 다 마치고, 저는 지난주부터 장례식장에서 실습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습생의 신분으로 있는 저에게) 문제라면, 이 작은 동네 장례식장에는, (그 규모만큼,) 늘 죽음이 있는것이 아니며, 죽음은 역시 예측이 가능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몇 건씩 입관과 장례절차를 지켜보고 참여하게 되는 날도 있었던 반면, 한 건의 죽음도 존재하지 않기에 청소나 장례용품 준비와 같은 소소하고 부차적인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주 불경하고 외람된 표현이지만, (실습생의 신분으로) 저를 비롯한 실습생 동기들은, 죽음을 기다리며 이 실습 기간을보내고 있습니다.
소소하게 허락된 이 시간에, 저는 그동안의 게으름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지 못했던 저를 반성하며, 메모장에 이렇게 몇자라도 글을 적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의 일상과 글 작업도 이런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섣부른 생각도해보게 되었습니다.
장례지도사 교육 과정의 끄트머리에서 저는 문득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교육을 마치고 나면, 실제로 취업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고, 이게 새로운 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 그냥, 앞으로 죽을 때까지 장례지도사로만 살다 죽게 되는것이 아닐까? 무섭다기보다는 속상해졌습니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 또한 무엇보다 귀하고 보람된 것이지만, 일의 경중이나 사회적 대우 뭐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제가 목사의 삶을 선택했던 것, 그래서 계속 목사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퀴어이면서 목사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목사로서 일하지는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고, 채우고, 비우며, ‘나’를 이어갈 것인지, 마음이 시끄럽고 복잡합니다.
장례지도사라는 신분과 기술이 하나 더, 더해지게 된 지금, 퀴어이면서, 목사로, 그리고 장례지도사로, 사람을, 퀴어를 섬기는 일,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살 수 있게 될지, 그리고 과연 그 길이 열리고 보이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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