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주님은 정말로 제가 필요하세요?”
글을 쓰는 것은 어디서나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주 글을 올릴 수 있었다면, 한국은 역시,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바쁘고 분주하게 만드는 공기, 또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가만히 있지 말라고 독촉하는 공기가 흐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딱히 제대로 된 일을 ‘아직’ 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참 마음이 바쁘고, 미국에 있을 때와 같지만 다른, 산란함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가 어려워 예전만큼 자주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께 다시 커밍아웃을 했고, 집안이 뒤집어진 상태로, 저는 가까스로 서울에 집을 구했습니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다른 직업을 구할 것이다. 장례지도사를 생각하고 있다.
- 이름을 바꿀 것이다. 개명하려는 이름도 이미 생각해 두었다.
- 교단을 떠날 것이다. 가능하면 미국 교단으로 옮기려고 한다. 내가 옮기려는 교단은 MCC라는 교단으로 퀴어 사람들, -퀴어 사람들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못 알아들을 것이라-동성애자들이 만든 교단이다.
- 동성애자들을 위한 사역을 할 것이다.
사람이 말을 입 밖으로 내면서 생각이 정리가 될 때가 있다고, 그 순간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던 것인지 저조차 가늠이 안되었다가, 제가 부모님께 했던 저 말들이 (일단은) 다시 시작된 한국 생활의 첫 방향성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서울에 방을 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것,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해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하고, 구직수당을 받을 수있는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대상자로 선정되어 5월부터 6차례에 걸쳐 얼마간의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5월 둘째주부터 장례지도사가 되기 위한 직업교육을 받습니다. 이 교육은 시간표 상으로는 평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과 실습이 진행되고, 7월에 마무리가 됩니다. 그 시간들이 어떤 시간들이 될지 아직 알 수 없고, 그 이후의 시간은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또 무엇인가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이 초조하고 또 복잡한 것은, 제가 여전히 목사이며, 앞으로도 목사일 것이고, ‘그런데’, 퀴어인 그대로 목사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퀴어 목사로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퀴어인 그대로언젠가 다시 설교를 하고, 성례를 집례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고, 무엇보다 아직 뚜렷한 어떤 길이 보이지 않아 힘들고 어렵습니다.
MCC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 미국 교단 목사가 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안수를받고 목사가 되었는데, 한국 교단이 그것을 취소하고 징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수를 하나님이 취소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과정 또한 계속해 나가고 있고, 제 목표는 올해 가을 노회에 맞춰 교단에 사직서를제출하는 것, 부차적으로, 그 사이 MCC와 협의가 잘 되어 MCC목사가 될 수 있다면 고마운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 교단은 떠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명은 사실 부모님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개명을 한다고 소용이 있겠냐만, 그래도 얼마간은 사람들이 제가 누구, 어느 목사 아들인지 파악하는 것에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 사이 제가퀴어 사람들을 위한 어떤 사역을 시작했거나 이미 계속되고 있는 퀴어 사람들의 사역과 함께하게 될 계기가 생겼을 경우에 진행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것이고, 그런 아무런 일이 없고, 저도 그저 목사보다 장례지도사로 앞으로 계속 살게 된다면, 굳이 번거롭고 불편한 개명 절차를 밟을 필요까진 없겠지요. (물론 제 본명을 알고 계시는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지금 제 이름도 한 번쯤 개명 생각이 들 정도 특이하고 특정되기 쉬운-제가 알기로 대한민국에서 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이름이기 때문에 개명의 필요성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저는 또 평생을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살아왔고, 또 개명 이후 처리해야 할 절차들이 여러가지로 번거롭고 불편한 것으로 알고 있어서 전에는 구체적으로 개명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막상 한국에서 한달이 조금 지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제가 한국에서 퀴어인 그대로, 퀴어 목사로서 사역을 하거나 설교를 하고 상담을 하게 될 일이 앞으로 정말 있게 될지, 오히려 점점 확신도, 자신도 없어집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잠들기 전에 누워서 항상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정말로 제가 필요하세요?”
퀴어 사람들, 퀴어 그리스도인들은 저를 필요로 할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국의 공기가 저를 이토록 초조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오늘은 여기까지 소식 전하겠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주일에 하나씩은 꼭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부족하고 재미없는 글, 제 근황들을 읽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계속해서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얼마 전엔 습기를 걱정하는 제 근황에 제습기를 사라며 지정 후원을 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이 글에서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렇게 큰 격려와 위로를 받습니다.
복된 주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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