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와 감기
감기에 걸렸습니다. 드디어.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오뉴월 감기이지만, 저는 그냥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라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푹 쉬지 못했고, 마음은 여전히 편하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내일부터 직업교육-장례지도사-을 받게 되는 날인데,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좀 걱정되고 짜증 섞인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감기는 보통 환절기에 몸이 계절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한 번씩
아프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번 감기가 어쩌면 몸이 아닌
마음이, 그리고 새로 바뀐 현실을 그냥 얼른 인정하고 적응하라는 신호 같기도 했습니다.
새로 직업 교육을 받게 되면서,
그리고 한국에서 지난 2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한국에서 ‘퀴어’로서, ‘목사’일 수 있는 것은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게 정말로 당연한 현실인 걸까요?
현실이, 한국이 저에게 너는 퀴어이거나 목사이거나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에게는 아주 혹독한 간절기가 시작되었고,
한국의 날씨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지만, 저의 날씨는 여전히 많이 춥고,
바람부는 겨울 한 가운데라서, 아마 그 겨울이 조금 더 길어질 요량이 아닌가 합니다.
내일부터는 정말 먹고 살 걱정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설교를 못한지 참 오래 되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저의 간절기를 목사가 아닌 그저 40대 퀴어 남성의 삶으로 전환하는데,
그리고 목사로의 삶에 대한 애도에 쏟아붓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간절기가 지나면,
저는 또 어떻게 달려져 있을까요?
어쩌면 하나님은 목사인 저는 필요 없으신 거였는지도 모릅니다.
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며, 주도적이고,
똑똑한, 그래서 더 강하게 판을 뒤흔들고 뒤집을 수 있는 어떤 퀴어 목사가 누구라도
나올 수 있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누구라도
이미 그런 목사는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애도를 먼저 하게 되는
지금이 우습고 아픕니다.
앞으로 계속 목사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한대로 글은 계속 써 내려가겠습니다.
무엇보다 퀴어 관점에서 성서 읽기에 관련한 글은 그래도 누구에게라도
필요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계속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밝은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경험한 은혜를 나누고, 그에 따른 생각과 단상을 가득 채운 예쁜
에세이를 쓰고 싶은데, 제 일상에 대한 글을 적어 소식을 전할 때마다 그와 반대되는 글자와 낱말로 글을 채우고
전하고 있는 것 같아 또 죄송하고 민망합니다.
저의 하늘이 닫혀 있을 뿐,
하늘의 그 하나님이 퀴어 여러분에게는 그래도 여전히 틀림없고 신실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모두 편안하시길…
의견/문의사항 DM
Bluesky: https://bsky.app/profile/ryaninnj.bsky.social
Twitter: https://twitter.com/newshin1983
*논쟁이나 욕설이 목적이 아닌 문의나 (반가운) 안부 인사를 담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블루스카이 DM은 언제나, 누구나 환영합니다.
돈이 많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Venmo: @RyanJShin
하나은행 18391029397907 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