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 마지막날

 5, 마지막 날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글을 쓰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몇 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 적응하고, 생계를 위해 새로운 직업 교육을 받고, 계속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고 몸부림치는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만들어 게시하는 마음을 쉽게 먹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마음을 다잡고 지난 한 달을 정리하며 적어 보려고 하는 내용은 5월인만큼, 가족에 대한 것입니다.

퀴어들 중에 효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핏 퀴어이기 때문에 불효자일 것 같은 우리들은 퀴어이기 때문에 그 부채감과 미안함에 참 많이 가족들을 생각하고 마음을 쓰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무섭고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못하고 어떻게 하지?’

아직 이렇다 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아들 입장에서, 그래도 이런 아들이 어느 정도 사람 노릇도 하고 다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 될 때까지, 아빠와 엄마가 더 늙지 않고 기다려 준다면 참 좋겠는데, 시간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보통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어느 순간 훌쩍 커 버린 자식을 보며 놀라면서 언제 이렇게 컸냐 말을 하고, 너무 빨리 크지 않았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지금 저는 반대로 부모님이 너무 빨리 늙지 않으셨음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에 집을 구하며 본가를 떠났을 때,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톡과 전화로 언제 내려올 거냐고 독촉을 해서 결국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엄마는 가족 톡방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명언이나 건강 상식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고 있는데, 동생에게 물어보니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엄마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엄마의 그 외로움에 저는 또 속이 상하고 마음이 조급 해집니다.

아빠는 올해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 유전자의 가장 큰 복이라면, 어떻게 감당이 안 되는 억세고 굵은, 더벅머리 머리 숱이었는데, 그 사이 아빠의 하얀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머리 숱도 전보다 많이 비어 보이는 걸 보면서 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한국으로 막 돌아온 직후, 부모님께 다시 한번, 두번째 커밍아웃이라는 큰 폭탄을 터뜨렸고, 이후 저와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서 DADT(Don’t Ask Don’t Tell)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행여나 이 아들놈이 자신들에게 선언한 그대로 퀴어 사람들과 어울려 퀴어 사람들을 위한 사역, 목회를 하려고 할까 봐 지금도 마음을 못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기롭게 그런 선언을 했지만, 실상 현실은 그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저 부모님이 조금만 더 천천히 나이 들어주기를, 아들이 하려고 하는 사역과 아들의 정체성을 인정해 주시기를, 더 나아가 그것이 틀림없이 맞고, 옳고, 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실 수 있게 되기를 오늘도 바라며 기도합니다.

요즘 저의 가장 큰 기쁨은 아직도 저를 낯설어 하는 두 살 배기 큰조카가 그래도 이제 삼촌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동생이 한 번씩 조카가 삼촌 보고 싶어 한다고 영상 통화를 걸어올 때면 마냥 행복하고 웃게 됩니다.

주께서 부디 이 퀴어 목사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지난 몇 달을 보내며, 설교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처럼 많이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가족과 더불어 언젠가는, ‘퀴어 가족과 함께하며 삶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게 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근간에, 아주 오랜만에 성서 본문이 담긴, 퀴어 관점에서 읽는 성서 관련 글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자꾸 미뤄집니다. 요즘은 평일 내내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 30분에 종로 5가의 한 상조 법인에서 장례지도사 교육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업 교육을 받으며, 당장 며칠 내에 지불해야 할 월세에 대해 고민하며, 생활비를 고민하며, 생계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께서 저를 발견하시기를 기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간신히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와중에 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날이 지나고, 6월 첫째날이 되었습니다


의견/문의사항 DM

Bluesky: https://bsky.app/profile/ryaninnj.bsky.social

Twitter: https://twitter.com/newshin1983

 *논쟁이나 욕설이 목적이 아닌 문의나 (반가운) 안부 인사를 담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블루스카이 DM은 언제나, 누구나 환영합니다. 




돈이 많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Venmo: @RyanJShin

하나은행 18391029397907 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두 번째 커밍아웃, 그리고…

“격려를 받겠습니다.”

다음주면 아파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