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Friday, Good Queer Easter

 Good Friday가 지나갔습니다. 영미권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일을 왜 Good Friday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어 위키를 검색해 보니 거기에서도 어원에 대해서는 그냥 영어 단어 Good에 경건하다 Pious, 거룩하다Holy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설명과 함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인류의 구원을 위한 희생이며 구원의 도구였기 때문에 ‘Good’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것이라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해설이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로울 것 없는 의미가 이런 건 영어 쓰는 사람들이 작명을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자신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며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고대인들의 인신공양, 카니발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Good Friday에서 ‘Good’은 예수가 나의 죄를 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내 죄가 모두 해결되었으니 개꿀~, 혹은 그렇게 죽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하게 되고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니 이 역시 완전 혜자! 와 같은 의미로 붙여진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또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지금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처럼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수난절에 Good Friday라는 별칭이 붙게 된 이유가 단순히 그런 것이라면, Good의 의미가 너무 저렴해지고, 보잘 것 없어지는 것임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열정이 충만하다는 사람들조차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런 모양으로 믿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성서가 말하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로 Good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순의 끝자락, 부활절을 앞두고 이 Good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깊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귀중한 의미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 퀴어 사람들과 어떤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예수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며 온 몸의 피를 쏟고 죽어갈 때, 그 피에서, 그 십자가와 그 죽음, 부활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고, 거기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 예수의 십자가는 살인자, 폭도들에게도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그 고통스러운 죽음의 시간 속에서도 여성 제자들을 돌아보고, 또 자신이 사랑한 제자에게 자기 어머니를 부탁한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예수의 십자가는 당시 사람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던 여성들까지 아우르고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의 죽음과 그에 따른 구원에서, 퀴어 사람들은, 퀴어 사람들만은 예외가 되는 것일까요? 십자가는 퀴어를 차별합니까?

절대로,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퀴어 사람들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습니다. 퀴어 사람들을 위해서도 대신 죽으신 분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고 있는 온전한 복음, 완전한 구원의 소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죽음에 어떤 차별도 없고, 이 구원에 어떤 차별과 혐오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수난절은 완벽하게 Good, 감격스럽고 좋은 날입니다. 다시 한번 부활의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을 앞두고 있는 이 새벽, 우리가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할 단 한가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십자가 죽음이 완벽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십자가 죽음이 누구 한 사람, 어떤 존재에게도 예외 없이 동일하게 유효하며, 같은 영향력을 가진 놀랍고 귀한 그래서 정말로 Good인 선택이며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도중에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부활절에 관련한 글은 기회가 되면 새롭게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활 전야에, 수난절, Good Friday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 봅니다. 이 위대한 구원 계획과 작업은 정말로 대단하고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Good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만큼 퀴어들의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퀴어 사람들을 위해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퀴어들이 예외가 될 수 없듯, 부활의 영광과 소망 또한 퀴어들의 것입니다. 퀴어가 그 부활의 영광과 소망으로부터 끊어져 있고, 소외되어 있지 않습니다. 퀴어들에게는 구원이 반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부활의 영광과 소망 또한 반만 누리고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수난절을 Good이라 부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그렇지만 명백하고 또렷한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퀴어 여러분,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되새기며, 이제 부활의 영광과 소망으로 우리 자신을 가득 채웁시다. 예수께서 퀴어인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퀴어인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이 십자가 사랑과 은혜, 이 부활의 소망과 위로가 필요한 또 다른 누군가들을 기억하며, 그 소외된 사람들, 그 소수자들과, 내 친구, 내 이웃과 더불어 이 부활의 날을 또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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