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차이, 저런 차이, 오늘도 살아있는, 한국인 퀴어 목사
한국과 미국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니 같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의 물가는 뉴욕/뉴저지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살벌했습니다. 두부 가격이 미국과 같거나 더 비싸고, 조류 인플루엔자의 영향으로 달걀 대란이 일어난 지금의 미국과 한국의 달걀 가격이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이 제가 지난 한 달 동안 한국에서 장을 보며 받았던 충격이었습니다.
반면에 많은 것이
또 달라서 다시 한국 패치를 심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중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파스타였습니다. $ 0.99 스파게티
면에, (물론 더 맛있고 비싼 좋은 라인들이 있지만 😉)1.99에서 시작해 3불 안쪽으로 살 수 있는 소스 한 통을 사고, 역시 3불 어간에서 양파 한 망을 사면 얼마 간, 며칠
간 파스타를 두둑히 해 먹을 수 있습니다. 새우나 고기, 베이컨은 당연히
한국보다 미국이 더 저렴해서 그런 것도 한 번씩 챙겨서 같이 요리하면 집에서 며칠 잘 버틸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한식은 식재료 값이 많이 드는 종목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한국의 이 괴상한 물가를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와중에 파스타를 해먹겠다며 마트에서 스파게티 면과 소스 가격을 확인하고, 아…한국이구나;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커피값을
절약하려고 커피메이커를 사서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핸드드립 커피에 큰 환상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미국 사는 동안은 아메리카노보다
필터 드립 커피에 더 익숙해져서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가 경제적으로도, 제 입맛도 잘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커피메이커를 사려고 알아보다가 당근으로 좋은 걸 싸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한국 커피메이커는 미국과 필터 모양이 달랐습니다. 한국은 역사다리꼴, 미국은 밑이 평평하고 둥근 필터를 사용합니다. 미국에서는 쉽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던 분쇄원두도, 오프라인 마트에서는 홀빈이 대다수에,
가격도 미국보다 많이 비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내려 텀블러에 담아서 커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긴 하지만😉) 커피메이커 때문에 차이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한국산
홍차는 녹차 맛이 납니다. 붉은 빛깔 녹차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에서 파는 브리타 용기와 필터 모양이 미국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습니다. 습식 욕실에 여전히 다시 적응하는 중이고, 카드 계산을 할 때, 터치가 아닌 삽입을 해야 하는 한국 방식도 다시,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더
좋다는 건가? 미국에서 그래도
잘 먹고 살았나 보네? 그런 의도로 읽히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지난 한
달간 제가 경험한 진짜 차이는 이것입니다.
구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방문에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하고, 구직자가 받을 수 있는 수당을 신청했습니다. 이번 주간에 가장 많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월 50만원, 6회 정도) 대상자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고,
앞으로 몇 주간 계속해서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해 상담사와 상담을 하며, 어떤
직업 교육을 받을 것인지 정하고, 해당 교육 과정에 꼬박꼬박 출석하며 적극적인 구직 의사가 있고,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해당 금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일단
장례지도사와 요양보호사 과정을 생각하는 중입니다. 장례지도사는 교대 근무를 해야 하고, 급여도 많이 높은 직종은 아니지만, 수요가 많고,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며, 목사인 저와 연결되어 있는 지점도 있기에-여담이지만, 저희 아버지 세대, 그러니까 집에서 장례를
치르던 시기에는 목사가 장례 전반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염습을 직접 하기도 했고, 그래서 저희 아버지도 염습 경험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일단
익히고 배우며 일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요양보호사도 수요가 점점 많아지고 있고,
또 일종의 돌봄 사역, 돌봄 노동이기 때문에 이 역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기껏 정신분석을
공부해 놓고 상담을 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의아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잠시 첨언하면, 정신분석 혹은 심리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 라이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주State에서 공인하는
주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한국은 국가 자격증이 존재하진 않지만, 일반 심리상담이든, 정신분석이든 해당 협회들이 자격 요건을 정해 그에 맞는 이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저도 군목을 하던 시절에 군목이기 때문에 한국목회상담협회에서 받게 된 상담사 자격증이
있어서 지금도 일반적인 목회 상담은 그 자격 사용해 할 수 있고, 또 한국은 국가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자격을 갖추지 않은 분들이 상담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그래도 상담과 정신분석을 배워 온 제가 그냥
상담을 시작하는 것이 ‘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일단 퀴어 친화적이지 않은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 목회상담협회 자격증을 걸고 상담을 하는 것이 저어되는 측면이 있고,
그래서 한국에서 정신분석대학원을 다니며 수련 받았던 협회에서 수련을 이어가며 정신분석가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떳떳한 방식이지만,
일단 정신분석 수련은…돈과 시간이 참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직업을
얻고,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수련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더불어, 목회적 돌봄, 목회상담은 자격이 필요한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적응하고, 경제적인 불안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퀴어 사람들, 퀴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단기 상담, 단기
회기를 전제로 한 목회적 돌봄 활동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본론입니다. 구직 활동을 하고, 지난 몇 주간 주일마다 교회를 출석하며, 그리고 한국 교회 안에서 퀴어 기독교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고, 퀴어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게 된 큰 차이는, 한국에서는 ‘퀴어’인 그대로 ‘목사’로 존재하는 것이, 여전히, 참 많이 힘겹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는 것입니다.
전에 어느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바로
얼마 전, 유니온에서 같이 공부했던 논 바이너리 드랙퀸 동기가 목사가 되어 자기 일상을 담은 릴스를 자기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유해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작은 동네 교회 목사가 되어 있었고,
무지개 빛 숄을 두르고 출근해 클러지 칼라 셔츠로 옷을 갈아 입고, 일상적인 목회
활동을 하다 평화롭게 퇴근해 드랙퀸으로 변신했습니다. 그가 목회하는 교회가 퀴어 사람들만의 교회도 아니었고,
그가 퀴어인 것이 그곳의 목회자가 되는 것에 문제나 어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퀴어인 것과 상관없이 그는 어느 교회 목사가 되어 있었고, 여느 목사들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며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퀴어’인 그대로 목사일 수 있는 것…한국에서는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것이 비싸면, 한국에서 저렴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해 먹으면 되고,
커피 필터 모양이나 브리타 용기, 필터 모양이 다른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지만,
퀴어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동일하고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일상을
누릴 수 없고,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프고,
또 견디기 힘든 차이입니다. 이 차이를 없애고 같아질 방법, 그런 시대가 한국에도 있게 될까요?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또 하나의 차이는 바로 이 빨리 빨리! 의 나라에서 휩쓸리게 되는 ‘조급함’과 ‘사회적 압력’입니다. 사실 한국에 온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그리고 그 사이 집을 얻었고, 바로 구직 활동을
시작하며 경제적 활로를 모색했고, 퀴어 기독교 활동가들, 퀴어 기독교인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 그래도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당장 무엇이라도 결정되었으면 좋겠고,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대로 있지 않고 무엇이라도
꿈틀, 하고 있는데 지금 정해진 직업이 없고, 당장 설교하는 교회가
없는 상황들이 견딜 수 없기도 합니다.
이 조급함과 가족, 사회의 압력에 순탄하게 적응도 하고,
저항도 하며 제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 퀴어인 목사로 존재할
수 있는 길을 조금씩, 꾸준히, 계속 걸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잘한 계획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 올린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미국의 퀴어 교단인 MCC로 소속을 옮기고,
이후에는 법적 이름을 바꿀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퀴어 그리스도인들과 사역의 일환으로
목회적 돌봄, 상담 활동을 위해 유튜브를 시작하고, 설교를 공유하며
저를 알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고, 어쩌면, 작아도, 모든 LGBT퀴어 사람들과 앨라이가 함께하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일단 개척하고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생명의 성령께서
길을 인도하고 보여주시도록, 또 그 한걸음이 생명의 걸음이 되도록,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앞서 언급한 그
조금함과 초조한 마음에, 한국에서
글을 쓰는 것이 미국보다 더 어렵고, 마음의 산란함과 어지러움에 선뜻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소식을 전하고, 생각을 나누고, 또 퀴어 관점에서 읽는 성서에 대한 글도 계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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