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뉴저지 하늘뜻교회와 다음주까지 함께하게 됩니다. 예배는 다음주까지 함께하지만, 다음주 예배는 대면예배로 모두 함께 모여 진행되고, 성찬 중심의 예배이기 때문에 뉴저지 하늘뜻교회에서의 설교는 이번주일 온라인 예배가 사실상 마지막이었습니다.

이번주 설교 본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성서일과에서 함께 평행을 이루고 있는 본문이 창세기 45장이었기 때문에 이 본문과 함께 설교를 구성했습니다.

창세기 45장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흉년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에 찾아 온 형들과 대면하고 몇 차례의 만남 끝에 드디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놀라고 당황하며 두려워하고 있는 형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45 5

요셉의 이 말에는 자신이 이집트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들에 대한 요셉 자신의 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형들에 의해 겪지 않아도 될 고초를 겪으며, 하루 아침에 부유한 족장의 사랑받는 막내 아들에서 노예가 되어 외국으로 팔려 가게 된 요셉은 그곳에서 모함으로 인해 아주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형들을 향해 자기가 이집트에 오게 된 것이 바로 그 형들을 포함해서 자신의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먼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이집트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들은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가득했고, 감옥에 갇혀 지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무의미한 것이었는데, 그런데 요셉은 그 모든 시간들이 바로 자신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미리 보냄을 받고 준비되는 시간이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이 본문을 읽고 대면하며, 저는 제가 미국에서 보낸 지난 몇 년 간의 시간이 결국 요셉이 자신의 삶을 해석한 것과 같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준비되는 시간으로 결론 맺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셉은 결국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자리, 한 나라의 총리가 되어 실제로 사람들을 살리는 일, 결국 자기 가족들까지 구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어느 것 하나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한국으로 향해야 합니다. 목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에 가면 지금 제가 속해 있는 한국 교단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교단을 탈퇴, 교단에 속해 있는 목사가 되는 것을 멈추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몇 년 전에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지만, 교단에서 탈퇴하겠다고 한다면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장담할 수 없고, 또 앞으로의 생계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무엇 하나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의 시간들이 성공적이지 않았고, 무익했으며, 그래서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데, 다만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이 건네고 있는 저 한 마디 말이 그저 요셉의 말이 될 뿐만 아니라 내 고백이며, 내 간증이 될 수 있기를 그저 잠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살리고 세우는 사람, 한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목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한국에서 누군가를 살리고 세우는, 요셉이 기근 속에 굶주리며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주어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에 대해 가르치면서 부활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상기시키는데, 이것을 씨앗이 땅에 뿌려지고 또 썩게 되었을 때 싹을 틔우고 썩지 않을 것으로 자라게 되는 것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씨앗은 아주 작고, 몸처럼 완전한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씨앗은 몸처럼 완전한 형체를 가진 생명 그 자체를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씨앗이 뿌려지고 또 결국 썩게 되었을 때, 그것에서 썩지 않을 것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씨앗으로서 뿌려지고, 심겨지고,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쁘고 완전한 씨앗 그 자체로 그 모습을 유지하고 더 크고 많은 씨앗이 되기 위해 애쓰고 아둥바둥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뿌려지고, 심겨지고, 썩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고린도전서 15장의 교훈입니다.   

어디에 뿌려져야 하고, 어떻게 썩으며, 무엇을 싹 틔울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마지막 설교는 저에게 위로나 소망이 아니라 기도이자 숙제가 되었습니다. 마음은 무겁고, 머리는 복잡합니다. 안 그래도 청소를 하지 않아 더럽고 지저분했던 방은 그래도 짐을 싸야 하기 때문에 다 꺼내 놓은 가방과 옷, 다른 잡다한 것들로 더 어지럽혀졌습니다. 누구라도 와서 짐을 같이 싸고, 대신 청소를 해주기를 바라고 열망하지만, 누구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텅 빈 통장 잔고와 카드 연체금에 대한 걱정,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로 무엇 하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작은 캐리어 하나씩, 그래도 조금씩 짐을 싸며, 또 그만큼의 마음을 포개고 정리해 봅니다.

저의 시간들도 요셉과 같이 의미 있고 쓸모 있는 것이었다고 다시 해석될 수 있을까요? 저는 미국에서 무엇을 뿌리고, 무엇을 심었을까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으로 뿌려질 수 있고, 어떻게 썩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 설교를 끝내고, 그 말씀들을 상기하며, 그저 가슴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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