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 없는 자기연민, 뜬금 없는 축복의 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전에 올린 어느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만약 내가 한국에서 이성애 수행을 위해 ‘이성’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관계에서 좋은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아빠가 되는 것 정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당시,
그래서 제가 하게 된 가장 큰 고민은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벽장 속 아기 호모였던 저는 시티에 올라온 중년 유부 게이 남성들에 대한 썰들을 읽고 보면서, (그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저런 모습으로 늙는 것이 내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녀에게 들킨 상황들,
아내에게 들켜 이혼하게 된 일들, 위장 결혼을 하거나 그것을 위해 그럴 수 있는
상대를 찾는 사람들, 젊은 게이들에게 집착하며 찾아다니고 돈을 소비하는 이야기, 정상성 수행을 위해-들키지 않기 위해-안간힘을 쓰는 것들…내 미래가 그런 모습이고 싶지 않았고, 내가 아빠가 된다면 내 자식에게 만큼은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목사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속이고 감추기를 계속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정직한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입양하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좋은 양육자와 후견인으로 든든하고 멋진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 멋진 중, 노년 게이, 게이 커플이 되어 보는 것,
그것이 제가 가진, 지금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꿈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외출도 잘 하지 않고,
사람도 잘 만나지 않았습니다. 매월 Gym 비용이 결제되고 있지만, 운동을 하지 않은지가 한참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례한 표현이 될 수 있지만) 정말로 되고 싶지 않았던,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모습인 배 나온 중년 게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온당하고 자연스러운 욕구이며 욕망인데, 매일
잠이 들기 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이제 나이도 많고, 이런 외양을 가지게 되었으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호감을 표시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큰 실례, 무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주지하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늙는 것을 그렇게 연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정말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특별히 퀴어, 특별히 ‘한국인 퀴어’ 사람들에게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대만에 이어 태국에서도 마침내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되었습니다. 많은 퀴어 커플들이
손을 맞잡고 자신들이 여기 있음을 당당하게 과시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동성혼 법제화와
혼인 평등을 이루는 일은 여전히 꿈 같고, 먼 훗날의 미래일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리지만 조금씩, 한국에서도 퀴어
사람들의 가시화와 퀴어 커플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멋지게 밝히고 나타내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그 모든 한국인 퀴어 사람들과 퀴어 커플들을 향해 부러움과
질시의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한없는 사랑과 축복을 담아 아주 잘 살고 있다고,
그 귀하고 특별한 인연을 잘 간직하고 아끼며, 더 마음껏 사랑하고 함께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법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존재가
없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법과 상관없이 귀하고 특별합니다. 그 가운데서 특별한 서로를 만나, 혼자가 아닌 ‘함께’로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한국인 퀴어 커플들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그 모든 인연들이
정말로 귀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지금 함께하고 있는 그 사람과 만나고 함께하게 된 것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것인지를 꼭 잊지 않고 한 번씩 생각해 보시면, 어떤 갈등이나 어려움도 이 한 가지 사실로 인해 풀리고 해결의
방향을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 하십시오.
우리 하나님도 그런 여러분을 무척 흡족하고 흐뭇하게,
참 좋다 말하며, 보고, 응원하고,
함께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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