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희망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계속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부분 2014년 4월 16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국가적 트라우마’라는 설명을 하시는 것을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저 역시 아주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이었고, 성 목요일이었던 그날, 부활절을 앞두고 부대 전체 위문과 부활절 간식 준비를 하려던 차에 사고 소식을 접했고, 전원 구조 소식을 접했을 때 안도했다가, 대부분 학생들이며,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간마다 배가 점점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성탄절 이후 첫 주일, 제주항공 사고를 접하며 그날의
기억과 마음이 겹쳐졌습니다. 광주에서도 근무했던 적이 있고, 그 때
당시 한참 지역 거점 공항으로서 기능이 광주에서 무안으로 옮겨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사고 희생자 중에 광주에서 양심적으로 치과 운영을 하던 치과 의사 한 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동료 의사들이 해당 치과 환자들을 도맡아 치료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설마…’하는 마음에 여러 다른 기사들과 제 폰에 있는 여러 기록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지도와 네비 어플을 다시 활성화해 그 때 기록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당시 자주 사용하던
SNS인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도 검색하며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졸였습니다.
벌써 몇 년 전이고 제가 기억력이 좋지 못한 탓에 치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가 광주에서 근무하며 살 때, 교회 교인 분의 추천으로 가게 된 치과가 있었습니다. 원장님이 정말 친절하셨고, 그래서인지 병원에는 엄마와 함께 환자로 온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이 치과는 아동 전문인데 내가 잘못 왔나 보다~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치아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진료를 받게 되었을 때, 서울과 광주 다른 몇몇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권했던 치아를, 그래도 가능하면 자기 치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을 수 있으니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사용해 보자고 하며 틀을 만들어 때우고 손 봐 주셨던 분, 그 치아를 최근까지 잘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광주와 치과 하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치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했던 곳, (이제) 지난 해 초에 - 6~7년이 지나- 마침내 때운 틀이 떨어져 나가며 다시 생각나게 만든 그 곳, 그 원장님, 결국 어느 다른 기사에서 치과 이름을 찾아 내, 지도와 사진을 보며 확인했을 때, 희생되신 분이 그 분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의 슬픔은 희생된 분의 가족과 친구, 지인과 소중한 사람들의 그것에 비하면 아주 작고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음에도, 그 잠시 그분을 경험하며 마주했던 기억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그 며칠을 보내며, 이 한가지를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기하게 된 것은, 우리는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을 것 같았던 그 사고에 나를 치료해
주시던 치과 의사 선생님이 포함되어 있으셨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내려가 함께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10.29 참사 발생 이후, 지역이 지역인만큼, 날이 날인만큼 혹시 아는 사람이 거기 있지 않았을까 마음을 졸였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태령에서 전농의 트랙터가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향해 함께 연대하며 길을
내던 장면, 거기 있던 수많은 퀴어 사람들,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대통령 탄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퀴어 사람들, 거기 있는 내 친구와
지인들, 그 집회에서 여성과 퀴어, 농민과 노동조합, 장애인과 시민들이 모두 함께 연대하며 대동의 장을 열었던 것을 같이 떠올리며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그렇게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공감과 연대가 감정적이고 지혜롭지 못하며, 나약하고 무능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 어느 시대에 여성들을 향해 그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그래서 객관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며, 나약하고 무능하다고,
그렇기에 남성들이 우위에 서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주입하고 가르치던 것과 같이, 이제는 어떤 사고와 참사가 발생했을 때, 희생자들에게 공감하며 그들과 연대하려는 사람들을,
장애인과 이민자, 퀴어 사람들과 노동자들에게 공감하며 연대하려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그래서 객관적이지 못하고, 나약하고 무능하며 소란하기만 하다고 매도하며 여론을 호도합니다.
공감하는 것이 감정적이며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사회, 연대하는 것이 시간 낭비이며 손해가 되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시대, 우리는 그렇게 다같이 서로를
죽여가는 시간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적이며, 지혜롭지 못하고,
나약하고 무능하다 여겨지는 존재들이,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연대의 끈을 동여매며 하나가 되어 한데 모여 대동의 장을 열었을 때, 군인들의 총을
다시 한번 막아냈고, 어리석고 광기에 사로잡힌 지도자를 궁지에 몰아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진짜 진리가 무엇인지를 서로를 통해 발견하고 배우며 위대한 역사를 다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슬프고 어두운, 지금도 언제 끝이 나고 정리가
될지 몰라 답답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는 연말과 새해 벽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희망이 되어 가며, 어둠에서 빛을 밝혀 내며, 꾸준히,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기에 마냥 슬퍼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 2025년 새해,
첫 달입니다.
멀리 있어 몸으로 함께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글로 마음을 표현하며 연대의 표시를 남깁니다. 이 기억을 통해 우리는 결국, 여성과 장애인, 노동자와 이주민, 그리고 퀴어 사람들의
열망과 바람을 실존하는 역사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여성이 더 안전하고 동등하며, 장애인들이 이동권과 탈시설 권리를 확보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실제적인 힘을 가지며,
이민자와 이주민들이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받는 사회, 퀴어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을 나타내며, 혼인 평등을 누리게 되는 시대를 우리는 함께, 그리고
결국 만들고 쟁취하게 될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래도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연대의 현장에, 이 연대의 시간에,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한국 교회는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교회가 그 공감과 연대를 나누고, 외치며, 보여야 하는데, 교회가 이 모든 이들과 함께해야 하는데,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런데, 거기, 한국 교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또한 많이 아프고, 또 참담합니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안식과 유가족들의 슬픔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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