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말씀 안하셔도, 나는 나아갑니다. 저금해 둔 믿음으로.
오늘은 미국에서 제가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상담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곳의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어떤 분이 자기는 요즘 성경을 일독하고 있는데 창세기 12장, 아브람이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에 가서 살게 된 이후에 기근을 피해 애굽, 이집트로 내려가게 된 부분에서 더 이상 다음 부분이 읽히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이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꼈다는 창세기
12장 후반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에게 거짓말을
시켰고, 그래서 애굽의 왕 바로를 속였으며, 그로 인해 바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재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하다가 이것이 아브람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아브람을 불러 그가 거짓말을 한 것에 화를 낸 다음 그의 가족을 애굽에서 내쫓아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분이 가지게 된 의문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아브람도 결국 기근이라는 현실에 타협해서 하나님의 지시 없이 애굽으로 갔다가 거기서 거짓말도 하고 결국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재앙을 경험하지 않았나, 결국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현실에서 앞이 보이지
않고 어려우면 현실과 타협하고, 거짓말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런 의문 때문에 삶 속에서 현실과 신앙을 어떻게 서로 맞춰 나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브람/아브라함이 날마다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등장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면 사실 아브라함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삶 전체를 통틀어 본다면 몇 번 되지 않는다.
4~5번? 많아야 7번 정도?
그럼 그 나머지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하늘만 쳐다보며 기다리면서 삶을 살 수 없다. 때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와 그 다음으로 나타나고 말씀하시는
것 그 사이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인도하심도 없는 것과 같은 시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살아내는 것은 오르지 내 몫이다. 또한 그 시간을 살아낼 때,
그 시간 속에서 어떤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경험, 그로 인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삶이다. 그 시간동안 오로지 내가 결정하게 되면서 실수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실수하고 실패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거나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아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때, 하나님으로 인한 어떤 경험도 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내가 그 삶의 시간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
(물론 제가 여기 적은 그대로 정확히 말씀드린 것은 아니지만, 제가 전하고자 했던 말의 요지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그분에게 이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실 저도 미국에서
제가 보냈던,
지금도 보내고 있는 시간들에 대해 정리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저나 저에게 질문을 했던 그분만이 아니라 오늘 함께 밥을 먹은 다른 모든 분들, 이 수업을 함께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이 동일하게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온 것이 잘 한 것일까?
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지지 않지? 내가 잘 결정한 것이라면 어떤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비자를 기다리고, 영주권 과정을
밟는 중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모이게 된 이 모든 분들은 그런 자신들의 삶과 어려움 앞에 치열하게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분들이셨습니다.
저도, 같은 고민, 같은 질문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가 미국에 온 것이 정말로 잘한 일일까?
내가 퀴어 사람이면서 목사인 것을 하나님이 정말로 아무 상관없어 하시고, 괜찮다고,
너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과 관계없이 나는 여전히 네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내가 믿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이 정말로 그런 분이라면,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왜 앞길이 열리지 않지? 내가 잘못한 걸까? 하나님은 정말로 동성애자는 미워하시는 걸까? 그래서 일이 안 풀리나? 그래서 깨닫게 하시려고 나 일부러 힘들게 하시나?
순간순간마다 수많은 날,
그리고 지금까지 저 질문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배우고, 믿고 있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동성애자를 미워하고 싫어하셔서 제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퀴어 사람들과 퀴어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어야 맞는 것인데, 아니거든요. 자신이 퀴어인 것과 관계없이
복을 누리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형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퀴어인 것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신다.’는 이 믿음을 흔들리면서도 굳게 붙잡고 살고 있는 지금,
아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이지 않는 지금,
제가 저에게 아브라함에 대해 질문했던 분에게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을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느껴지지 않는 이 시간을 정말 저 믿음으로,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낼 때,
그 어느 날 불현듯 하나님의 음성이,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그래도 살아야 한다,
돌아보고 결심하게 되는 오늘, 이었습니다.
사실 지난 한 주간 탄핵도 탄핵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이런 저런
것들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우연히 같이 신학을 공부했던 친구, 친구들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인 대형교회에서 잘 개척해 준 멋진 교회의 담임이 되어 있었고,
다른 한 친구는 지금 그 친구 있는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한인 교회의 일원으로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미국에서 신분도 안정적으로 보장된 상태에 평온하고 순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는 서울의 대형교회 수석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주중에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부모님은 언제라도 돌아와도 된다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해 주셨지만, 제가 돌아가면 한국 교회에서 다시 일할 마음은 없다는 것, 미국에서 그리 성공적인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이미 전에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지만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계시기에 여전히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는 것, 그런 여러가지가 마음을 어렵게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주일이었던 오늘, 이 한 분을 통해 아브람/아브라함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믿음을 기초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글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학부와 대학원 시절, 제가 함께했던 선교단체에서 보낸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그래도 믿음으로 한걸음을 떼는 것을 포기하지 말고,
멈추지 말아야겠죠.
제 삶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게이도 돌보고, 먹이시며, 삶을 인도하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오늘 주일을 보내며,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하면서도,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간절했던 것, 하나님께서 한국에도, 제 삶에도,
빨리 무엇이라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좋은
것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카드 대금 결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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