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승리-나라도, 퀴어들도, 퀴어 그리스도인들도,

 미국에서의 경험들은 실패의 경험들이기도 하지만, 해방의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귀와 빨갱이가 가득한 학교처럼 취급되는 뉴욕 유니온에서 엉겁결에 공부하게 되면서, 저는 오히려 해방을 경험했습니다.

첫학기를 보내면서 수업시간에 자기 소개를 할 때, Pronoun을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내 거기 담긴 의미를 알게 되고, 게이, 바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신학생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신학을 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것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해방의 공간에 내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니온은 다양한 교단과 신앙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퀘이커와 유니테리언을 비롯해, 가톨릭과 이슬람, 시크교, 불교 배경의 신학생들의 함께 공부했습니다. 목요일이면 학교 학생회에서 -유니온에 초청되어 잠시 공부했던 본 회퍼의 이름이 붙어 있는- 강의실에서 펍을 열어 공짜로 맥주를 마실 수 있었고, 제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한 명은 논 바이너리 드랙퀸이었으며, 다른 친구 한 명은 트랜스젠더 여성이자 레즈비언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을 이해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왔던 남성 친구 한 명은 에이엄? 젠더 퀴어? (제가 지금은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인 여성 친구에게 고백했다 차여서 상처를 입었던 일도 있었고, 다른 아시안 친구 한 명은 어느 날 조용히 저에게 다가와 너는 이 사람들과 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퀴어 신학이 이해가 되냐며 넌지시 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퀴어 친구들 모두가 이미 제가 한국인 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제가 그 해방의 공간 유니온에서 제 정체성을 숨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 친구만은 아시안인 네가 설마 퀴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저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한 동의를 구한 것입니다. 그곳에서만큼은 소수인 그 친구의 질문을 그저 웃어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렬했고, 놀랍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제 삶에서 그 어느 때보다 안전했고, 제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유니온에도, 정말 다채로운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던 만큼 오순절 계열의 학생들도 있어서, 정기적으로 기도와 예배 모임을 열기도 했습니다. 선교단체 출신인 저도 반가운 마음으로 그 모임에 참석했는데, 짧은 머리의 멋진 레즈비언 부치 신학생이 기타를 치며 예배 인도를 했고, 그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임은 열기로 가득했고, 백인과 흑인, 퍼시픽, 아시안이 함께 모여 방언으로 기도하며 서로 안수했으며, 누군가는 누워서, 누군가는 큰소리로, 누군가는 손을 들고 자유롭게 예배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해방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의 유산을 품고, 폴 틸리히, 라인홀드 니버와 같은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교수로 명망을 높인 곳이기도 했으며, 흑인신학과 흑인여성신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유니온에서 저는 그 모든 신학의 세례와 더불어, 저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제가 저인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곳에서 어떤 판단도 받을 필요 없이, 비난과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자유로운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글에서 이 경험을 자세히 옮기는 이유는, 이미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 공동체와 이 공간, 시간이 언제쯤이 되면, 한국인 기독교인들의 경험이 되고, 그런 공간이 구성되고, 그런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왜 여전히 한국인 퀴어 기독교인들에게는 그것이 꿈만 같은 일일뿐인지,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며 그 때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퀴어 사람들에게 이 해방과 자유의 공간이, 이 해방과 자유의 시간이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까요?

도래라 하기엔 지금도 이 일들을 위해 현장에서 애쓰고 있는 수많은 퀴어 운동가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퀴어/앨라이 기독교인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느 날 갑자기 임하는 도래의 시간이 아닌, 이들의 노력이 정말로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게 되는 날이 우리의 나라 한국에서도 꼭 오게 되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첫번째 시도가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앞으로 이어질 두번째, 세번째 시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큰 절망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여러 SNS에서 오히려 더 결기에 차서, 끝장을 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그리고 오히려 신나 보이는 20대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되겠는데?’ 다시 한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탄핵도, 퀴어 해방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직, 여전히 신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퀴어 그리스도인들도 움츠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해방의 그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도 가만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퀴어들에게 사막과 같은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꽃이 피고 향내가 나며, 독사와 사자 같은 흉포한 한국교회가 꺾이고 함께 뒹굴며 예배하는 날이 정말로 속히 오게 될 것이라고, 바라고 기도하며, 대림절 두번째 주일을 앞두고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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