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한 성경 해석: 퀴어 복음, 퀴어 하나님 - 시작하면서,

 *논쟁이나 욕설이 목적이 아닌 문의나 (반가운) 안부 인사를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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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는 몇 차례에 걸쳐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퀴어하게 읽고, 해석하며, 적용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앞서 계속 나눴던 제 일상과 짧은 생각들도 번갈아 가면서 올릴 것입니다.

퀴어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한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말과 교회 공동체의 분위기, 전통을 참 잘 따르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불경하고, 위험하며, 성경 해석은 아무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부로 해석하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는다면, 배울 수 없고, 변할 수 없으며, 성숙하고 성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변화와 깨달음, 성숙과 성장은 모험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르틴 루터와 종교 개혁가들이 교회가 면죄부를 팔며, 교회의 권위와 전통을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두고 그것을 정당화하던 시기에, 거기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며, 고민하고, 싸우지 않았다면, 개혁도, 개신교회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며, 가톨릭 교회도 변화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퀴어인 내가 성경이 퀴어인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퀴어 사람인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바라보고 계시는지, 질문하는 것, 고민하는 것, 싸우고 부딪혀 보는 것은 오히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성경을 퀴어 관점으로 읽고 해석한 내용들을 소개하면, 퀴어 당사자인 기독교인 본인조차 그런 것은 성경을 너무 작위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아닌가요? 질문하며, 그렇게 퀴어 관점의 성서 해석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반응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됩니다. 여러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모든 성경 해석은 자의적이며, 작위적인 것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모든 성경 해석들도 처음에는 자의적이며 작위적이었습니다. 기존 교회 안에서도 지금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해석과 교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제하지 않고, 기록된 그대로, 시대의 변화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근본주의이며,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기로 결정해서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수혈을 하지 않는 것, 심지어 의사의 도움도 거부하는 것, 그런 믿음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여성은 교회 안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려야 하며, 바울은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좋겠다는 가르침을 전하기도 했는데, 가톨릭 교회 공동체조차 미사에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을 권하고 있는 지금, 목사가 되려면 오히려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을 필수 요건으로 지정하고 있는 개신교 교단도 존재하고 있는 지금, 성서 해석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누군가 가르치는 그대로, 아니면 정말 성경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내용만을 수용하려는 것이, 그것 만이 진짜 믿음 있는 사람이며, 성숙한 신앙의 방식인 것일까요?

저는 절대적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믿고 존중하는 아주 보수적인 신학과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시라는 것,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동의하며, 전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셋이며 하나이신 하나님, 삼위일체의 교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은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예수와 성부 하나님 사이의 관계, 예수의 정체, 그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각자의 작위적이고 자의적인 해석들을 내어 놓으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했던 결과로 지금 대부분의 개신교회 공동체와 가톨릭 교회가 진리로 믿고 따르고 있는 삼위일체라는 개념과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그렇게 성서에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하나의 문장으로, 구체적인 개념으로,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히브리 성서(구약)와 신약 성경 전체를 아우르며 살펴 보면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 적절한 설명이라고 전적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퀴어 사람인 우리가 퀴어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존재에 대해 성경으로부터 답을 얻으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 성서와 신약 성서의 몇몇 구절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심지어 퀴어 사람들에게는 구원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하고 명확한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서가 기록될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기록된 몇몇 구절들이 성경 전체가 말하고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격과 예수의 가르침을 가리거나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몇몇 구절들은 비단 동성애에 대한 언급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항들 또한 존재하고 있고, 그 모든 구절들을 지금, 현대의 우리들이 다 문제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있는 것처럼, 퀴어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 또한 어떤 특정한 한 구절들이 아닌 성서 전체의 맥락과 가르침을 기반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저 지금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그대로, 단지 그들의 목소리가 크고 다수이기 때문에 그것이 맞고 옳을 것이라 생각하며, 퀴어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인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고 자책감과 두려움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퀴어 사람으로서 퀴어한 관점으로 성서를 읽고 해석해 보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구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고, 그것을 우리의 믿음의 근거로 삼고 있다면, 퀴어 사람으로서 퀴어 사람인 내게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무엇인지, 예수는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지 함께 찾아봅시다. 성경에 답이 있고, 그 답은 심판과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택하셔야 합니다. 계속 그저 퀴어 사람들을 죄인이며 용서받지도, 구원받지도 못할 존재라고 정죄하고 저주하는 그 가르침과 소리에 머물러 계실지, 퀴어 사람들을 향한, 퀴어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이 복음, 이 복된 소식에 마음과 시선을 열여 볼 것인지, 둘 사이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제가 계속해서 나누려고 하는 '퀴어한 성경 해석: 퀴어 복음, 퀴어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전제, 마음에 대해 먼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 성서 해석에 관한 글들은 가능하면 음성이나 (아직은)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 영상으로 만들어서 팟캐스트나 유튜브로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담은 못합니다. 일단 제가 무척 많이 무기력하고, 무척 많이 녹음이나 영상 제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어떤 프로그램을 써야 하며, 어떻게 편집을 해야 하는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있지만, 언제 정말로 이걸 실행에 옮기게 될지, 약속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냥, 마음은 있다…그런 말을 드립니다.)

 

앞으로 나누려는 주제들: (일단)

창세기: 창조, 퀴어 하나님, 요한 1: 기독교, 퀴어 그리고 사랑, 요한복음: 사마리아인 그리고 퀴어

바울서신: 바울과 퀴어, 신약성경: 초대교회, 이방인 그리고 퀴어

사도행전: 예루살렘 회의, 룻기: , 나오미, 성경의 주인공들 사도행전: 에티오피아인 내시

복음서: 퀴어한 예수의 사역, 예수의 복음, 성경 전반: 퀴어 하나님, 퀴어 예수 그리고 퀴어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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