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복종?
*급하게 글을 썼습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밤 사이 아주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있는 미 동부 시간으로 늦은 새벽에 잠을 자기 시작했던 저는 한국에 있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한국 많이 힘든가보네, 그렇다고 무슨 또 계엄 정국이라고 말할 것 까지야~’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한국이 지금 계엄 정국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저는 그것을 한국 상황이 계엄 정국 아래 놓여있는 것처럼 정치적, 사회적으로 너무 답답하다는 의미인가보다 정도로 여기며, 그 말을 그냥 단순한 비유 정도로 치부했던
것입니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아, 설마 하며 뉴스를 검색해보면서,
그 친구의 말이 비유가 아닌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정말 이게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인가?
그리고, 반란은 진압되었습니다.
벌써부터 야당은 지난 밤 대통령의 행위를 ‘내란죄’로 규정하며, 탄핵 소추를 비롯해 그의 직무 정지를
위한 여러 수단을 검토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대통령은 어떤 형식과 절차로든 곧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저는 제가 대학생 시절 후배와 함께 나눴던
대화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이제 막 신입생으로 들어온 동아리(선교단체) 후배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인 갈등과 이슈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는데, 그 후배가 저에게, “형, 저는 왜 사람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지금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그 친구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교회 안에서 착하고 신앙 좋은 학생으로 너무나 잘 자라다가 이제 막 신입생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 후배에게,
교회 안에서 배운 그대로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에 있어 가장 큰 기준과 절대선은 바로,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말문이 막혀
허허 웃다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권위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물으며,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가 잘못된 판단을 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의 대답에 놀라고 당황하기는 했지만,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대답 그대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로마서 1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 1절 공동번역
이 말은 바울이 이제 막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
로마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며, 사고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중에 그 일환으로
나온 말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새사람이 된 우리가 어떻게 바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 여러가지를
가르치는 중에, 국가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에 속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면서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지는 본문에서 ‘조세를 바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충실히 이행하며, 세금 잘 내는 사람이 될 것을 권면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같은 본문에서 바울은 또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통치자들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나 두려운 존재이지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통치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선을 행하십시오..그러므로 하나님의 벌이 무서워서뿐만 아니라 자기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도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3, 5절 공동번역
통치자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두려운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그 통치자의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것이 같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통치자도 악을 행하지 않고, 악을 벌하는 본분을 다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이 그 통치자의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통치자가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지 않고, 도리어 통치자가 악을 행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바른 통치를 하지 않는다면, 양심에 반하는 통치를 일삼는다면,
양심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통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양심에 따라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같은 본문에서 그것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즉, 본문 속의 단 한 구절, 단순히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그 한 문장을, 오로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제 게시한 글에서도 계속 이야기했던 성경을 그저 문자 그대로, 성경이라는 레시피를
아무런 고민이나 노력 없이 기록된 그대로만 따르려는 태도인 것입니다.
바울은 권위에 대한 복종도 말하고 있지만,
그 복종을 단순히 벌을 받을 것이 무서워서가 아닌 ‘양심에 따라’하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양심에 반하는 권위,
부당하고 잘못된 권력 앞에서는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또 다른 기준과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적용하며,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히틀러라는 부당한 권위와 권력에 맞서서 독일 고백교회의 본 회퍼
목사는 암살단을 조직해 그에게 대항하며 그를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본 회퍼 목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했던 것일까요?
누구도 함부로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더불어, ‘퀴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과
믿음과 행동이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다수의 한국교회 공동체가 무조건 퀴어 사람들은 모두 죄인들이며,
그래서 함께 예배할 수 없고, 교회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존재들이니 그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교회 안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해서, 그 말이, 그런 성경 해석과 가르침이 참 되고, 성경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른 성경 해석이며, 그래서 무조건 수용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율법에 따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과 히브리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유대인들)은,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갔던 시기에
그들의 땅에 남게 되어 앗수르의 침략에 의해 강간을 당하고, 그 영향으로 혼혈 집단이 되어 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을, 그들도 분명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율법에서, 히브리 성서와 전통에서 그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리하며, 같은 공동체로 여기지 않고, 따로 살고, 따로 예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바로 그런 사마리아 사람들의 땅에 ‘일부러’ 찾아가셔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물과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예배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유대인들이 드리는 예배와 똑같은 가치와 의미가 담긴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하겠지만,
예수의 사역과 설교 또한 그 누구보다 강하게 히브리 성서의 전통적인 해석과 적용을 뒤집어 엎고, 새롭게 해석하며 적용하는 전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이단자라 공격했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단순히 ‘권위에 복종하라’는 한 문장에 사로잡혀 그것을 우리의 믿음의 기준으로 삼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퀴어 사람이면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다만 성경의 몇 문장,
몇 가지 글자에 옭아매며 자책하고 자학할 필요와 이유도 없습니다. 성경은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도 않고,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2절
공동번역
말씀처럼,
문자 하나와 기존의 관습에 얽매어 자기 스스로를 속박하며 자책하는 믿음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진짜 진리, 서로 사랑하는 것, 사랑 안에 자유를 누리고 경험하는 것을 찾고, 구하고 행하는 모든 퀴어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부당한 권위와 권력 앞에서도,
그것이 다만 권위와 권력이기 때문에 따르고 복종하는 것이 아닌, 내 양심과 판단을
가지고, 옳은 것을 위해, 참된 것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우리
모두, 그리고 이 시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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