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동료가 결혼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은 계정만 유지하며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엔 계엄과 탄핵 국면을 맞아 열어보게 되는 일이 전보다 조금 더 많아졌습니다. 오늘 무심결에 페이스북을 접속했다가 유니온에서 같이 공부했던 동료 한 명이 지난 달에 자신이 결혼한 소식을 알리며 사진을 올려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의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깊이 알고 있지 못하고, 지금도 명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게시한 사진에는 멋진 (외적인 모습으로 유추하면) 여성+여성 커플이 있었습니다.
그 동료의 파트너도 유니온에서 공부할 때 안면이 있던 같은 유니온 학생인 걸 발견하고,
저는 학교 다닐 때 두 사람이 커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터라, -혹은 제가
졸업하고 나서 커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반갑고,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 이 동료는 루터교 목사인데, 예배 전례가 다른 개신교단에
비해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루터교단에서의 동성 결혼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글을 쓰며 문득 그것도
궁금.
유니온에 있을 때, 같은 학년의 지정성별 여성 레즈비언 친구가 저와 기숙사 같은 층의 다른 레즈비언과 사귀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트랜지션을 진행하고,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교제를 이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이 커플은 이미 몇 해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때 이후 학교 동료 중 동성 결혼을 하는 것을 알게 된 건 이번이 두번째인 것 같,,, 다른 게이 커플도 있긴 했는데, 거긴 아예 학년도 다르고, 듣던 수업도 다르고, 기숙사 같은 층에 살며 복도에서 지나가며 인사만 했던 사이라,,,그런데 아마 그 커플도 결혼은 한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그럼 제가 보게 된 동문 게이 커플이 이제 세 쌍이 되었습니다. 기숙사 한 층에 방이 10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중 (제가 알고 있던) 퀴어 사람만, (저 포함) 다섯 명이었던, 참 좋은 신학교를 제가 졸업했습니다.😊
미국에
올 때, 아니 그전부터,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니,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를 워낙 좋아하고,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도, 정말
만에 하나 천에 하나 (사회적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이성과) 결혼을 해야 된다면, 그건 정말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 하나가 유일한 위로이자 희망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결혼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이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해서, 서로 마음과 상황이 준비되면 소중한 아이를 입양해서 함께 가족을 만들고
싶은 꿈을 꾸곤 합니다. 미국은 아이가 있는 게이 커플의 경우, 대리모
출산을 통해 아이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 주에 따라 게이 커플은 입양이 어려워서 그런 경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내 유전자와 피를 물려받은 아이와 함께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
제 개인적인 신념은 대리모 출산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싶지 않고,
또 입양을 통해, 어떤 한 사람의 삶을 안전하게 할 수 있고, 미래라는 가능성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정말, 저에게 그런 일(결혼)이 있게 된다면, 남편과 함께 아이를 입양하고, 가족이
되어가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혼인 평등 의제가 퀴어 사람들 사이에 주된 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과 더불어 혼인 평등에 대해서도 많은
시도와 가시적인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실제 법 제도와 상관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결혼 인증을 하는 게이, 레즈비언 커플들과, 정자를 제공받아
출산을 하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도 언론에 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 평등은 한국에서 여전히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동성부부가 의료보험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은 판례가 나왔고, 직전에 언급한 여러 동성 커플들이 한국에서도 일단
혼인신고를 시도하는 것이 하나의 운동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법적, 제도적 진보를 차치하고서라도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인 동성 부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저 불가능하다 여기며 상상하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법과 제도 위에 서서
그 모든 것은 상관없이 식을 올리고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는 많은 한국인 퀴어 커플들을 보면서 내가 저 운동의 한 당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기
때문에, 알지 못하지만 퀴어 종족의 일원으로 그분들을 응원하게 되고, 또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사랑은 결국 이기게 되어 있고, 한국에서도 법과 제도로 혼인 평등이 이루어지게 될 날이 어쩌면 생각보다 빠르고 급하게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늘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정말 순식간에 좋은 일이 생겨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이미 법과 제도가 완비되어 있는 이 곳 미국 땅에서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루게 될지, 혹은 법과 제도가 없더라도 어쨌든 내 나라인 한국에서 그 일이 내 삶의 가장 멋진
한 사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불쑥 페이스북에 자신의 동성 결혼 소식을 알린 제 신학교 동료처럼,
저도 턱시도 입은 두 남자의 사진을SNS에 공개하게 될 날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몇
년 전 저는, 저에게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게이 친구의 결혼식 주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 셔츠를
입고, 무지개 스카프를 스톨(영대) 삼아 목에 걸고 친구의 결혼식을 인도할 때, 목사로서 저의 첫 주례가 게이들의 동성 결혼식이라는
사실이 무척 감격스러웠고, 그 결혼의 주인공이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라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곧 그런 날이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도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식
만 나이로도 40대가 되면서, 올해 2024년 저의 첫 기도 제목은,
(상대도 없는데) 결혼이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주님은 저의 이런 오랜, 투정 섞인, 기도와 열망,
바람을 이루어 주실까요?
제가
항상 언급하는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모두 보냈던 그 선교단체는 오순절 교단과 성령 운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만큼 연애나 결혼에도 그에 관련한
신화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존재했습니다.
정말 흔히 교회나 신학생을 까는 이야기로 “내가 기도해 봤는데 주님이 너와 결혼(연애)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와 같은 종류의 일들이 그
단체 안에서 실제로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 정말 이상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실제 연인이 되고, 결혼도 해서, 지금껏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옆에서 보기에도 괴이해 보였던 그 일들을 해내는 이들을 보거나 들으며
징그럽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는 주님이 동성 커플에게도 그렇게 일하신다면(실제로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여부는…주님만 아시겠지만;) 재미도 있고 감동도 두 배 이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게이 한정, 당사자성을 담아) 퀴어들은 뭔가 저 표현을
“내가 기도해 봤는데 주님이 너와 섹스하라고 하셨어!”라며 응용과 수작질을
더 많이 할 것 같긴 합니다. (아, 저는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주제도, 깜냥도 없습니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섹스라면, 하고 싶음 그냥 하고 싶다 말하면 되지 거기에 뭘 또 주님의 이름을 팔
것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연애나 결혼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퀴어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목사인 제가 인정하는 진정한 용자…이지만,
제가 가까이하고 싶은 분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무튼
오늘은 원래 기독교인(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등 모든 교회를 포함해 예수를
향한 믿음을 가진 이)들은 지금 대림절기를 보내고 있으니, 예수 탄생의
의미를 퀴어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문득 페이스북에서 제 동료의 결혼 사진을 보게 되어
이 글을 먼저 쓰게 되었습니다. 곧 예수 탄생의 의미를 퀴어 관점으로 조명해보는 글과 계속해서 예고했던,
퀴어 관점으로 성경 읽기 주제의 글들도 작성해 게시하겠습니다.
결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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