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를 주웠다(拾われた男 )'- 평범함과 소소함에 대한 동경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미드, 한드, 영드나 일드까지 이것저것 다 보는 편인데, 오늘은 제가 최근에 보게 된 일드 한 편을 중심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오늘 이 글에서 말하려는 드라마의 한국어 제목은 이 남자를 주웠다’, 영어로는 ‘Lost Man Found’, 일어 원제는 拾われた男’(영어 음차로는 Hirowareta Otoko인 것 같습니다) 입니다. -이렇게 제목을 언어별로 길게 다 적어 놓은 이유는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배우 마츠도 사토루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 것을 드라마로 만든 것입니다. 배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제가 이 배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나 인지도가 있는 배우인지, 책을 드라마로 만들면서 실제 배우의 삶과 극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부분들 사이에 비중은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한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글에서 적을 내용들은 오로지 드라마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드라마는 마츠도 사토루라는 배우의 인생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되고 있는 사토루는 성격도 좋고, 적극적이며,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어 졸업 후 고향으로부터 도쿄로 올라가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고, 그저 연기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만 있는, 그렇다고 재능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 그런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사토루에게는 가족 안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주목받고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형이 있습니다. 그런 형에 비해 사토루는 지극히 평범하고 뭐든지 형에 비해 모자라고 철없이 보이는 사람이었고, 사토루가 연기자가 되겠다고 하자, 사토루의 형은 네가 연기를 할 정도면 나는 할리우드에도 갈 수 있겠다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는 이런 사토루가 어떻게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하게 되는지, 가족을 떠난 형을 대신해 구심점 역할을 하며 그 가족을 어떻게 하나로 모이게 하는지를 담백하게 묘사합니다.

사토루는 정말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연기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작 연기가 잘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고, 얼른 성공하지 못해 괴롭고 초조해하기도 하고, 소심하고 서투른 성격 탓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며, 자신보다 잘나고 대단했지만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가버린 형을 동경하기도, 원망하며 미워하기도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토루는 어떤 면에서는 그래봐야 조연이고, 그래봐야 여전히 돈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는 소시민에, 그래봐야 형이 떠나고 없으니 누구라도 부양해야 할 가족을 책임지게 되는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사토루의 삶은 그만큼 평범하고 소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평범함과 소소함을 사토루를 통해 경험하는 시청자들은, 그 평범함과 소소함이 진짜 인생이며, 진정한 행복이라 공감하며 사토루의 삶에 스며들고 그를 응원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토루가 하나씩 차근차근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 나갈 때, 어느 날 미국으로부터 한 연락을 받게 되는데, 정말 하루 아침에 사토루를 비롯한 가족 모두와 절연하고 미국으로 가버린 그의 형이 지금 심각하게 아픈 상태로 입원해 있고, 불법 체류자 신분이기에 곧 추방되어야 하니 가족이 인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곧장 미국으로 건너간 사토루는 15년 만에 형과 재회하게 됩니다. 거기서 사토루는 자신이 동경하고, 그래서 원망했던 형이 왜 가족을 떠났는지, 미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토루는 형과 화해하며 형을 데리고 무사히 귀국합니다. 집안에서 천덕꾸러기였던 사토루가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 가족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회복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토루의 아버지는 그런 사토루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사토루의 가족은 사토루로 인해 또 다른 일상의 행복을 다시 만들어 가게 됩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극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의식적으로 많이 생략하고, 자세히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토루와 형의 관계, 사토루의 형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글을 쓰려고 했던 주된 이유이기 때문에 조금 더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토루의 형은 게이였습니다. 형은 부모님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혔고, 부모님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자 갈등 끝에 미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토루의 형은 그전부터 자신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곳, 미국을 동경해왔고,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마저 뒤로 한 채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삶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가진 돈을 잃어버리고, 비자가 만료되며 불법체류자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고, 좋은 친구들도 만났지만, 결국은 병을 얻어 병상에 누운 채로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극에서 사토루의 형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은 아닙니다. 그러나 극의 초반에는 사토루와 비교되며 더 잘나고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로 부각되어 사토루가 그를 동경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의 동력으로 삼는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토루의 형은 극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앞에서 설명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지만, 사토루의 삶이 그려지는 극 전반에 걸쳐 사토루의 형 타게시가 어떻게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가족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하며, 그곳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경험하는 타게시의 사연은 제가 이 드라마에 이입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타케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끝에 가족을 떠나게 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저의 관점은, 일반이기 때문에 평범함과 소소함을 행복으로 온전히 경험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사토루와 이반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뒤로 한 채 가족을 떠나야 했던 타케시가 대비에 대해 생각하며 보게 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퀴어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다종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다종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퀴어 사람 중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명망 있고 전도 유망한 직업을 가진 사람,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 십대도 있고, 노인도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퀴어이기 때문에 특별한 시선이나 특별한 대우, 특별한 삶을 바라고 꿈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퀴어이든, 퀴어가 아니든지 상관없이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평범함과 소소함으로 채워진 일상을 꿈꿀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사토루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과 행복, 어쩌면 별 특징 없는 삶의 모습은 그의 형인 타케시 또한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타케시는 자신이 퀴어이기 때문에, 그 하나로 가족을 떠나게 되었고, 외국에서 사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자신이 마땅히 누리고 경험해야 했을 가족과의 많은 추억과 일상들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된 형 타케시와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토루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매듭지어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그런 사토루의 눈물이 (물론 극중에서 사토루가 흘리는 눈물이 그런 의미로 그려지고 있진 않지만) 퀴어이기 때문에 평범함과 소소함을 가질 수 없었던 타케시에 대한 회환과 애도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그런 평범함과 소소함을 꿈꾸고 있는 퀴어 사람들, 그것을 지키고 싶어서 자신을 벽장 속에 가두고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퀴어 사람들, 그 평범함과 소소함이라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퀴어 사람들, 다종 다양한 퀴어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우리 존재들이 크고 대단한 것을 바라며 꿈꾸는 것이 아닐텐데, 그 평범함과 소소함을 아무런 장벽 없이, 퀴어인 그대로 한국에서 누리면서 살기에는, 아직도 참 많이,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일본 드라마를 보맨서 한국의 현실이 떠오르고, 그래서 사토루의 행복을 더 동경하게 되었던, 그런 감상의 시간이었습니다

(참, 드라마 남주가...'적당히' 잘 생겼습니다. '나카노 타이가'라는 배우이며, 주인공의 형 역할은 한국 사람들도 잘 아는 배우인 '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가 맡아서 연기했습니다.)

나카노 타이가 소개영상:  https://youtu.be/qjKUnHYA2Sk?si=7In0lihYjP4AzfMu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중에 누군가는 벽장 속의 은둔을, 누군가는 저나 타게시와 같은 이방인의 삶을, 누군가는 앞서 나가 우리들의 권리를 위해 긴 싸움을 택하며 저마다 삶의 자리에 계실 것입니다. 각자의 상황과 배경이 다르고, 생각도 다른 만큼 여러 선택도 존재하고, 그래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특별히, 우리 또한 이 평범함과 소소함을 마땅히, 당연히 누릴 수 있도록 하려고 앞에서 싸우고 있는 퀴어 사람들을 기억하고, 할 수 있으면 적극적으로 여러 방법으로 도울 수 있는 분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열심히 돕고, 열심히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원래 글을 두 개 작성해 보려고 했는데, 늘 마음 먹은만큼 몸이 따르지 않네요. 탄핵 정국 이후에는 저도 더 혼란스럽고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뭐가 손에 제대로 안 잡히는 것 같다는, 이유와 핑계를 적어 봅니다. 성경 해석에 대한 글은 다음주엔 꼭 정리해서 올리기 시작하겠습니다. 집회 현장에 가시는 분들 모두 따뜻하게 입으시고, 무엇보다 안전하시기를 바라며 멀리 있지만 기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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