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 (어쩌다 보니) 이번 글은 조금 길어졌습니다.

 

한국에서 학부와 신학 대학원을 다닐 때, 제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선교단체 활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부생은 연애도 못하게 했던 (정확히는 4학년 1학기까지였던가?) 그 선교단체 활동을 뭐 그리 열심히 했나 싶고, 그때도 저는 항상 도망 다니고, 그리 적극적인 멤버는 아니었음에도, 그 때의 추억과 배움들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단체는 개별 캠퍼스 활동과 더불어 매주 서울 인천 경기 지역의 학생들이 모여 같이 예배를 드렸고, 여름에는 매년 지역 혹은 전국 단위로 수련회를 했으며, 겨울애는 해외 전도여행을 다녔는데, 같은 캠퍼스가 아닌 서울 인천 경기 지역 전체 대학의 소속 학생들을 나라별, 특기별로 지원을 받아 섞어서 팀을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선교단체들에 비해 자신의 학교만이 아닌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류도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그 때는 대학생들이 할 일이 없었나? 싶은 그런 일이지만 -그래서 안 그래도 다른 대학생 선교단체들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도 아주 작지도 않은 그런 정도의 선교단체였고, 그래서 지금은 단체의 규모 자체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년 작아지고 있다고 전해 듣고 있지만- 어쨌든 그 때만 하더라도 아직은 그런 대학생 선교단체들이 건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성애 연애조차 못하게 하던 그 단체를 정말 사랑하면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이 단체의 특이점은 또 원하는 사람은 6~8개월동안 공동생활을 하며 강의를 듣고, 해외전도여행을 하는 선교훈련 프로그램이 있는 곳이었는데, 8개월 프로그램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방학-학기-방학 기간동안 공동생활을 하는 와중에 학교를 다니고, 방학동안 전도여행을 다니는 방식이었고, 6개월(혹은 5개월) 프로그램은 아예 그 프로그램에 전념해서 3개월동안 강의와 훈련을 받고, 2~3개월동안 전도여행을 다니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무려 국제선교단체여서 해외에도 지부가 많이 있었고, 각각의 지부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위에 설명한 프로그램 중 후자를 선택해서 해외 베이스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이 사람 정말 다른 의미로 엄청난 (?) 사람이었구나, 저런 사람이 어떻게 커밍아웃을 결심하고, 게이인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었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지금 기준이라면, 나 많이 이상했군; 그 시간에 빨리 나 자신을 인정하고, 종로나 이태원 나가서 친구들 사귀며 놀아야 했는데~ 싶지만, 그 때는 정말 그곳에 진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이 동성애 문제도 해결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들, 세월을 지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생각 자체가 어리고 우스운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동성애는 문제’, ‘음란함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 하나님은 동성애자인 나를 동성애자인 그대로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결론을 더 빨리 내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아무도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도, 동성애 문제에 관련한 신앙 서적과 신학 책들이 존재했습니다. 찾아서 읽기도 열심히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책들의 결론이 하나같이, 동성애는 인정해서는 안 되는 이며, 설령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더라도 동성애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런 성향을 인정하더라도 독신으로 사는 것이 신앙적으로 바른 태도이며 방식이라는 결혼을 내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도 괜찮다고, 퀴어인 너의 존재 그대로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고 사랑하신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한국에 한국인 퀴어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가 있었지만, ‘감히그곳에 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동성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신학, 기독교 공동체는 잘못된 것이며, 이해는 하지만 내가 함께할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도 어디에서, 누군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톨릭과 개신교 공동체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거나 혹은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서, 혹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거리낌 없이 공유되고 있는 퀴어 사람들을 향한 혐오와 정죄를 경험하다가 공동체를 떠나 더 이상 모이거나 예배하지 않고 있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저의 배움과 경험을 기반으로, 그리고 제가 만나고 알며, 지금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하나님을 감히대변하며, 지난 글에서, 그리고 이 블로그의 시작부터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하려는 것은, 퀴어인 그대로, 당신의 존재 그대로,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 만날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적 지형과 성별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이어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는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성관계, 무분별한 성행위에 대한 경고가 있을 뿐, 우리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규정이나 법, 사례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나누겠지만, 성경은,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는, 기존 질서와 잘못된 채로 유지되고 있던 문화,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의 역사이며, 그 가운데서 약자와 소수자였던 여성과 장애인, 이방인이 오히려 반전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에도, 당시 문화에서 허용되지 않고 있었던 여성의 상속권에 대해 여성 가족 구성원이 그것을 요구했을 때, 그 요구를 수용했던 일이 있었으며, 히브리 성서의 시대에도 여성이며 이방인이었던 룻이 이스라엘 왕조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진짜 주인공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고, 율법에도 이방인과 과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당시 사회에서 죄와 저주의 결과로 여겨지던 장애인과 피부병, 혈액에 관련된 질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고쳐 주시며, 그들의 편이 되어 주셨고, 당시 유대인들이 분명 자신들의 일족임에도 혼혈이라고 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일부러 찾아 가셔서 그들도 정당하게 예배할 수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의 그런 행동들은 당연히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예수는 바로 그런 행위들로 인해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인 오순절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주로 유대인만 있었던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인해 여러 다른 나라의 말들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이방인들에게 문을 열고, 확장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이 바로 이 유대인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순혈이 아닌 이방인 교인들이 대립하는 구조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이방인들을 아우르고 포용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약자와 소수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복음으로 삶이 바뀌고, 신분과 처지가 전복되어 주인공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한국 교회에서 그런 기독교의 역사와 전통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다시 이 시대에 오신다면 과연 누구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고 욕을 하며 쫓아 낼까요?

퀴어 사람들을 쫓아 낼까요? 퀴어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는 한국 교회 대부분의 사람들을 쫓아 낼까요?

저는 장담합니다. 예수님이라면, 그분의 교회에서 퀴어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는 한국교회 구성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도리어 그들을 내쫓을 것입니다.

퀴어 사람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 내쫓김을 당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복음 앞에, 자신이 퀴어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에수님은 퀴어 사람들의 편입니다. 퀴어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저를, 저의 지향과 정체성을 존재 그대로 인정하고 나서, 종로와 이태원을 다니게 되었을 때, SNS에서 이쪽 사람들, 퀴어 사람들의 계정을 접하게 되었을 때, 종종, ~ 나 저 사람 아는데? 저 사람 어느 학교 누군데? 하며 알게 되거나 정말 딱 클럽 앞에서 대면하게 되어 아니 형제님이 왜 여기에? 하고 서로 웃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선교 단체에서 알던 사람들,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여러 면에서 사랑이 많은(?) 단체였던 것 같은;) 한편으로는, 지난 주에 교회에서 만나 인사했던 병사와 교인을 빨간 어플에서 보게 되거나, SNS에서 알게 되거나, Bar와 술집, 클럽에서 보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그런 경우엔 주로 제가 재빠르게 숨었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 서로 많이 민망하지 않도록…) 그렇지만, 그게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가톨릭과 성공회, 전통적인 형식의 예배 형식을 따라 성찬과 예배를 진행하는 개신교 일부에서는 예배와 성찬에서 이런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여러분(성도)과 함께

또한 목사님(사제)과 함께 하소서

 

(퀴어 사람 모두, 어떤 조건도 자격도 필요 없이, 아무 상관없이) 찬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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