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정신분석을 공부할 무렵, 운전해서 다니던 차가 말썽을 부리고, 크고 작은 접촉 사고들도 연이어 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수업에서 그런 상황들을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분석 상황에서 본다면 그것 또한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뭔가 이야기하고 분석해 볼 대상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사고와 정비들은 제가 원인이었던 것도 있지만, 타고 다니던 차가 중고차들이라 고장과 결함이 있었던 것도 있었고, 상대방의 과실이었던 것도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무의식과 정신 역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건 분명 과도하고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렇게 지나가듯 던진 교수님의 말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 사고들의 원인을 무의식의 작용과
사고로 분석하긴 어려워도, 교수님의 그 말이 저의 무의식 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교회를 건축하느라 마음과 상황이 복잡한 시기였고,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목사가 되고,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쪽 사람들을 만나며, 막 이쪽 경험들을 쌓고 있던 -애기 호모- 시기였기에 저의 내면 세계와 심연, 무의식의
공간도 복잡하고 좌충우돌하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청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출할 일이 없기 때문에, 옷을 차려 입고 신경 써서 입지 않게 된 것이 오래 되었음에도,
방 한구석에는 아무렇게 벗어놓은 옷들이 쌓여 있고, 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책상
겸 식탁 위도 휴지와 쓰레기들이 그대로 있으며, 바닥에는 배달 음식을 먹고 난 흔적들 -박스와 종이백-들이 굴러 다니고 있습니다. 부엌 쪽 상황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며 그 외의 말들은 모두 변명에 불과하지만,
제가 통과하고 있는 우울과 무기력의 시간들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자고 일어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책상과 바닥을 볼 때면, 음, 이거 지금 현실 세계일 뿐만 아니라 내 무의식과 내면 세계를 반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빈도수가 줄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쓰레기를 배출해야 하는 지정된 요일이 되면,
쌓여 있는 쓰레기들과 냄새를 유발하는 부엌의 음식물, 식재로 쓰레기들은 대충이라도
정리해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할 힘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 본인이 다른 건 다 안 하고, 못하고 있어도 청소는
잘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직 충분히 건강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내적 에너지가 아직 고갈되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전에 올려 놓은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저의 경우, 유학은 일종의 도피였고, 도망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큰 걸 바란 것이 아닙니다. ‘퀴어 사람’이면서 ‘목사’일 수 있는 것. 그 한 가지가 제가 바라고 꿈꾸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퀴어 인권 운동에 앞장서 나설만큼 용기 있고, 의지가 있는 사람도 아니며,
그런 방향으로 목소리를 내기엔 공부도 능력도 한참 못 미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내가 퀴어 사람이며, 종교 지도자이기 때문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당사자로서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퀴어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앞장서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결연한 마음이나 소명 의식이 충만한 것도 아닙니다.
퀴어 사람이지만 그것이 아무 상관없는,
평범하고 별 다를 것 없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 그 정도가 제가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한국인’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목사인 저를 비롯해, 교인들도 자신이 퀴어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이 같이 모여 예배하고, 대화하며, 함께할 수 있는 것, 사실 그게 정말로 ‘교회’ 아닐까요?
마음대로,
뜻대로, 꿈을 꾼 그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느 순간부터 그것, 그 실패를 인정하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하든지 그게 무슨 쇼용이 있나 싶은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제가 하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실 미국인 사회, 교회 공동체에서는 저의 이런 경험이 이제는 우습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교회가 무지개 깃발을 걸고, 퀴어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있고, 개이,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 목회자들이 퀴어 사람들만의 교회가 아닌 그저 모든 사람들의 교회로 그 안에서
사역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한국인 교회 공동체들이,
그런 교회, 그런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걸 정말로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한국인 퀴어 그리스도인들이 ‘퀴어’인 그대로 ‘그리스도인’일 수 있음을, 그래도 하나님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여전히 동일하고 변함없이 ‘퀴어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분이심을 알리는 것입니다. 퀴어이면서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퀴어 당사자인 제가, 퀴어 목사가 말하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공동체가 교회 안에서 퀴어 사람들을 지우고 없애려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 사람의 문제일 뿐 하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퀴어로 존재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퀴어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퀴어인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당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목사’인 저의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변방의 한 구석에,
이 기록들을, 퀴어 당사자인 목사의 기록을 남깁니다. 누군가 말하고 있었다, 한국인 중에도 누군가 ‘퀴어’인 ‘목사’가 있었고, 그 퀴어 목사가 말했다, 교회 ‘안에서’
퀴어인 그대로 존재해도 된다고! 그게 진짜 정말 예수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저는, 청소와 정리를 해야 하겠지요. 실패와 상관없이,
시간의 문제일 뿐, 사람이 부족했던 것이지 언젠가는 한국인 교회 공동체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만은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것은
그것 그대로 시간과 역사에 맡겨두고, 제가 해야 할 정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방도, 저의 내면도, 어찌 되었든 주어진 삶을 계속
살아내려면.
청소 도와 주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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