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거면 더 일찍,

 어린 시절(?), 군에서 막 전역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만 하더라도 저는 후회라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지, 아니면,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큼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 본 탓인지, 언제부터 후회라는 것을 한 번씩 해보게 됩니다.

주제가 후회라서 이번 글에서도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저의 후회는, ‘이럴 거라면 더 일찍 나와야 -더 일찍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쪽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야- 했다.’ 입니다.

퀴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을 통과합니다. 저는 제가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중학교 때부터 알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어린 시절에도 남다른(?) 면모들이 있었지만, ‘~ 나 남자 좋아하는구나?’하고 자각했던 것은 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주 훌륭하고 열정 넘치는 개신교 꿈나무였던 저는 당연히 그런 생각과 욕구들을 음란로 여겼습니다. 열심히 싸웠습니다. 대학교 때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기숙사 방 한구석에서 게이들이 모여 있는 다음 카페에서 남자 사진들을 구경하고, 기독교 이반 카페에도 가입해서 기웃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기독교 이반 카페에서 어떤 형과 대화를 나누고 그 형 집까지 가서 그 당시 사람들이 많이 보던 미드 위기의 주부들을 같이 봤는데, 막상 다 보고 누워서 뭘 해야 할 때가 되자, 물기도 하고 빨기도 했는데, 삽입과 사정까지 하면 정말 죄인이 될 것 같아 그 바로 직전에 형에게 그만 하자고 말하고 정말 문자 그대로 손만 잡고 잤던 기억도 납니다. (그 때 했어야 되었는데

정말로 이쪽 사람들을 만나고 이쪽 경험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우습게도 목사가 되어 군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던 바로 그 해였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 이쪽 친구를 그 때 만났고, 그전까지 기웃거리기만 하던 종로와 이태원을 그 거리의 주인공이 되어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이쪽 친구들이 생겼고, 물론 그 해 겨울, 역사적인 첫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목사가 되고 나서 이제 정말로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쪽 사람들을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시기 언제인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쪽 생활을 잊지 못해 젊은 사람들을 찾고 만나러 다니는 중년들, 유부남 게이들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는데, 자칫 하다가 그게 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가 목사인데, 내가 내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솔직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정직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제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로 결심하기까지, 오히려 제가 신학교와 선교단체에서 배우고, 훈련을 받았던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배우고, 경험한 하나님이라면,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지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설령, 한국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처럼, 이 동성애라는 것이 아주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죄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맞았습니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고, 공부가 계속될수록 동성애 그거, 하나님 앞에서는 별거 아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데 그렇게 크고,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어떻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성애자들이 서로 만나서 사귀고, 성관계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퀴어 사람들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분과 퀴어 사람인 우리가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데 그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성애자들을 더 사랑하고, 퀴어 사람들은 멀리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제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쪽 사람들을 만나고, 목회도 하고, 공부와 유학을 이어 나가며 삶과 신앙의 경험들이 쌓일수록 오히려 더 명확하게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그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거면 더 일찍 나와야 했다.’

괜히 무서워하고, 괜히 걱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닌데, 그런 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것 또한 제가 아둔하고 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더 일찍 용기를 내고, 더 일찍 결심을 했더라면, 오히려 하나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목사가 되고 난 이후에, 군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게이들의 만남 어플을 하다가 종종 아는 얼굴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나 학교, 동아리, 같은 부대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어느 사람이 알고 보니 너도?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군인이며 목사라는 신분 때문에 제가 사진을 공개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도 아는 척을 하지 못했고, 사진도 올려놓고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라고 비교적 더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는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특히 기독교 공동체를 배경으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 알은 체하지 못하지만, ‘너도?’ 하며 응원하게 됩니다.

나의 신앙과 게이로서 삶의 과정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너의 삶에도, 여전히 그 하나님으로 인해 변함없는 은혜가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 만나게 된 사람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넘어서, 혹시라도 지금도 신앙과 정체성 사이에서 두려움과 고민 가운데 어려운 시간들을 통과하고 있는 퀴어, 그리스도인 동지들이 있다면, 괜찮다고, 그렇게 큰 일 아니라고, 당신의 정체성이 어떻든, 무엇이든 하나님은 아무 상관없으며, 변함없이 당신과 함께하신다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아끼신다고 꼭 전하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앞으로도 계속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는 이유이며, 목적이고, 또 퀴어 목사로 계속 남을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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