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끝장나지 않습니다 애가 1장 1~4절, 3장 21~26절 100525 로뎀나무그늘교회 설교
성서일과에 따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예레미야 애가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멸망하게 된 이후,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 어느 이름 없는 이스라엘 민중에 의해 기록된 다섯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도 그저 Lamentation, 즉, 애가, 슬픔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 이 책의 히브리어 원제는 '에카Ekka' 라는 한 단어로, 어찌하여, 어째서, 아~슬프다'와 같은 슬픔의 탄식 소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시작인 애가 1장 1 절과 2 장, 4 장 또한 이 탄식 소리, EKKa 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애가서의 내용과 구조는 단순합니다. 1 장부터 5 장까지 다섯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모두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멸망 이후 예루살렘의 모습에 대한 참담한 마음과 슬픔, 고통과 절규로 채워져 있고, 그것이 어떤 부분은 시의 형태로, 어떤 곳은 하나님을 향한 분노를 담은 질문으로, 또 한편으로는 회개와 반성문으로, 그리고 결국 간절한 간구와 기도를담은 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애가서에 담겨 있는 이 시들을 누가 지은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들의 저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이미 수차례 경고하고 예언했던 예루살렘의 멸망이 실제로 일어난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보게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뤄진 것을 보게 된 목격자이자 증인이었습니다. 그 광경은 실로 처참했고, 참담했으며, 끔찍하고 잔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주님께서 이미 예전부터 경고하고 작정하셨던 것이었고, 하나님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이미 여러 번 남유다 왕국의 권력자들과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있을 때, 마침내 예레미야가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처럼, 성실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아주 성실하게, 그분의 도시 예루살렘과 그 분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린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여기 애가 2 장 17 절에 기록되어 있는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뜻하신 것을 이루셨다. 주님께서는 오래 전에 선포하신 심판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 주님께서 너를 사정없이부수시고, 네 원수가 너를 이기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네 대적이 한껏 뽐내게 하셨다.
애가 2 장 17 절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애가서에 기록된 다섯 편의 시를 지은 이스라엘의 한 이름 없는 민중은, 예레미야가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제로 예언이 성취된 현장 앞에서 슬픔과 한탄을 담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애가 1장 1 절과 4 절의 노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예전에는 뭇 나라 가운데 으뜸이더니 이제는 과부의 신세가 되고, 예전에는 모든 나라 가운데 여왕이더니 이제는 종의 신세가 되었구나
시온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쓸쓸하다니! 명절이 되었는데도 순례자가 없고, 시온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도 인적이 끊어지니,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구나, 시온이 이렇게 괴로움을 겪는구나.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군요. 슬프네요. 그래서요? 애가서가 기원전 6 세기 어느 때, 황폐화 된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슬픔과 좌절의 노래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많이 슬펐겠네요. 그런데 그것이 오늘 2025 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무슨,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특별히 퀴어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는 2010 년 10 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한국에서 7 년간 군목으로 목회를 한 다음, 2018 년 8 월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올해 3 월까지 뉴욕과 뉴저지에서 살았습니다. 미국으로 가면서 제가 했던 굳은 결심은 제가 목사로서 성도들 앞에 설 때, 앞으로 더 이상 제 정체성을 감추고 숨기면서 사역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첫 학기를 시작하는데, 한국에 제가 졸업한 모교에서 아이다호빗 데이에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던 친구들이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연달아 이동환 목사님의 징계 소식과 임보라 목사님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제가 속한 교단과 졸업한 신학교에서 동성애 지지와 퀴어 당사자인지 여부를 질문 로하며 사람들을 뽑고 내쫓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그 와중에도 명성교는 법을 어기고 부자 세습을 감행했으며, 존경하던 목사님들과 선생님들의 비겁함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바사에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으며 슬퍼했던 느혜미야의 심정처럼, 그런 한국교회 소식을 접하게 될 때마다 저는 애가서의 이 한 마디를 내뱉으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에카…
그렇게 퀴어 사람들을 쫓아내고 나서 교회가 좀 잘 되었다면 그나마? 어쩌면? 다행이었겠지만, 교인들의 숫자는 점점 더 감소하고 있고, 해마다 신학교 지원자들도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퀴어 사람들을 혐오하면서 그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았는데, 정작 자신들이 사회에서 점점 더 혐오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는 지금, 한국교회의 쇠퇴와 멸망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가서의 노래들은 이제 단순히 기원전 6 세기 어느 시기, 멸망한 예루살렘에 대한 슬픔과 애도의 노래가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시대에 교회의 쇠락과 멸망을 목격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결국 지금보다 더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잃고,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한국 교회를 보면서 계속 이 애가를 지금 이 시대에 우리들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끝나는 것일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애가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교훈의 전부일까요?
다행인 것은 애가서에 기록된 노래는 이 한탄과 분노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가를 기록한 사람, 이 이름 없는 이스라엘 민중의 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셨던 그 일들이 이뤄지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탄하며, 상심하고, 분노하며, 슬퍼했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는 또한 히브리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이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해 냈습니다. 여기 애가 3장 21 절부터 25 절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애가서의 시들을 짓고 만든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자신들을 향해 어떻게 말씀하고 약속하신 분이신지 곰곰히 생각하며 기억해 냅니다.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다만 심판이 끝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신실하심이 크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애가서의 저자는 이 심판과 멸망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하고 계시는 애가 3 장 22 절은 우리가 읽은 새번역에서는 생략되어 있는 구절이 존재합니다.
새번역은 이 구절을 번역할 때 유대인들이 더 오랜 세월동안 사용하고 보았던 시리아어 역본과 타르굼, 즉 아람어 역본의 전통에 따라 번역했는데, 히브리어 원어 사본에서는 이 시리아어 역본과 타르굼에 생략되어 있는 한 구절이 더 존재합니다. 그래서 개역개정판 성경과 이번에 번역된 새한글성경에서는 이 히브리어 성서에 존재하는 구절을 포함해서 기록해 두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되새기는 것, 내가 희망을 걸고 기다리려는 까닭은 이것입니다. 곧 여호와의 한결같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장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여호와의 자비는 다함이 없습니다." 애가 3장 21~22 절(새한글)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성서일과에서 오늘 히브리성서 애가서의 말씀과 함께 신약의 말씀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은 디모데후서 1장 1 절부터 14 절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게 된 바울이 자신의 다음 세대인 디모데를 향해 전하고 있는 당부의 말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목회서신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고,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맡은 바 선한 것을 지키십시오. 디모데후서 1장 12-14절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목회 서신의 바울 또한 애가서의 노래들을 만든 사람처럼, 자신의 온 인생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이미 감옥에 갇혔고, 이제 예수의 교회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답답하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다음 세대인 디모데를 향해 자신이 맡아온 것을 그분이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는 애가서 전반부의 말씀을 통해 교회의 멸망, 교회의 쇠락과 쇠퇴를 바라보며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회는 이미 망했고, 사람들을 앞으로도 점점 더 교회와 예수를 외면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망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틀렸고 가치없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망했지만, 우리는 교회가 망한 그 자리에서 서서, 애가서의 저자처럼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고 한탄하며 분노한 다음, 그 다음, 다 울었으면 이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약자와 소수자를 향하며그들과 함께하셨던 복음의 능력이 오늘 우리들에게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가 교회를 다시 세우고 회복시킬 근거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Ex.엘리사 시대의 한센병 환자들, 유디트, 예수의 제자들의 퀴어함, 전복의 복음)
지금 한국교회가 퀴어들을 정죄하더라도, 그 정죄와 비난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맙시다. 우리는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끝장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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