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에 관한 어쩌다 ‘쓸데없이’ 거룩하고, 쓸모 없이 거창한 글

 학부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제가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았던 공동체는 예수전도단YWAM이라는 선교단체였습니다. 지금도 예배를 계속 이어 오고 있는 화요모임을 비롯해, 부흥, 캠퍼스워십과 같은 음반들이 당시 한국 교회 안에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예수전도단은 찬양을 주로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물론 에수전도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훈련 중 하나가 예배이긴 하지만, 예수전도단은 찬양하는 동아리나 단체가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선교단체입니다. 예수전도단은 사람들이 선교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결단하게 하는 통로로서 예배의 기능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단체 안에서 예배에 대한 강조와 교육도 참 많이 이뤄지곤 했는데, 그 때 제가 예배에 대해 배우면서 알게 된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그냥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따라 찬양Praise’경배Worship’로 구분할 수 있고, 찬양은 Praise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대로 상대방, 즉 하나님이 행하신 어떤 일에 대한 감사와 고백을 담아 하나님을 칭찬하고, 하나님과 친밀해지기를,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경배는 ‘Worth가치있는‘~ship 상태, 성질, 자격, 지위의 합성어로 하나님 그대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담고 있는 내용의 찬양들이라는 것이 그 때 제가 배운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별것 아닌 분류와 구분인데, 사실 이 분류와 구분을 지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예배에 대한 이 두 가지 분류와 개념이 지금까지 제가 하나님과 관계를 이어가고 예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있던 시간 중 최근 몇 년간 제가 가장 많이 되뇌인 찬양은 베델 교회에서 발표한 곡인 ‘Goodness of God 선하신 주님이라는 곡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I love you, Lord한다는 고백으로 시작해 주님이 나에게 정말 선하신 분 ~You have been so, so good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이 곡을 듣고 또 부르며, 저는 이 찬양을 저의 기도로 주님을 향해, 주님이 이렇게 선한 분이시니, 신실하신 분이시니 다시 한번 그 선하심과 신실함을 경험하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Way Maker라는 곡은 제가 맨해튼에 있는 타임스퀘어 교회에서 예배하면서 처음 듣게 된 노래였는데, 이후 한국에서도 많이 유명해졌습니다. 이 찬양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대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배 찬양을 부를 때, 저의 경우에는 두 가지 과정을 거치거나, 왔다 갔다 반복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니, 내게도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왜 나는 그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냐고, 내가 배운 하나님은 어디 갔냐고 경배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과 싸우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은 내게 여전히 그런 분이시라고, 내가 배운 그대로,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있다고 고백하고 다짐하는 이 두 상태를 반복하며 경배의 노래를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목회를 했던 때처럼 매일 새벽기도를 했던 것도 아니고, 학생 시절 선교단체에서 배운 말씀묵상QT를 지속적으로 했던 것도 아니지만, 주일 예배 외에 그래도 제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던 저의 영적 훈련의 도구는 이런 찬양들을 듣고 부르며, 개인적으로 주님을 찾고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 가운데 찬양과 경배를 반복하며 주님을 찾고, 기억하고, 싸웠습니다.

학생 때 예수전도단에서 예배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 찬양 인도자였던 어느 간사님이 예배는 하나님과 뛰어노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살아보니 예배는 단순히 하나님과 뛰어노는 것, 그 이상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뛰어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울기도 하고, 그러다 화를 내고 분노하다가, 화해도 하고, 옛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지만, 앞날을 걱정하며 의논하기도 하는 하나님을 앞에 두고 그런 모든 것을 함께하는 시간, 활동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퀴어 정체성이 그 주님과 나 사이의 연결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의심되고 두렵다면, 그것마저 주님 앞에 던져두고 다른 누가 아닌 주님과 함께 씨름하고 싸워야 합니다. 거기에 답이 있고, 결론이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풀리지 않고, 외롭고, 아무도 내 편인 것 같지 않을 때,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방법이 없는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예배,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끌을 쓰는 과정도 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디 그 하나님이 조금 더 빠르게, 속히 응답을 해주신다면 참 좋겠는데. 그 때까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붙들고 주님을 경배하며 싸우고, 또 기다려야 하겠지요.

오늘은 정말 어쩌다 쓸데없이거룩하게, 쓸모 없이 거창한 글을 썼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따로 다시 한 번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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