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면 아파도 될까요?
한국으로 돌아와 주말은 서울, 주중은 본가를 왕래하며 지내는 중, 지난 주부터 목이 아프고 열이 올랐는데,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본가에서는 아버지가 제 방을 꾸미며 부러 새로 장만해 들여 놓았다는 침대 매트리스가 저에게는 조금 딱딱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몇 주 전 귀국 이후 제가 몰고 온 커밍아웃이라는 회오리 폭풍이 아무 깔끔한 정리도 결론도 없이 모두의 평화를 위해 그저 서로 Don’t Ask Don’t Tell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지, 잠을 깊게, 오래 못 자고 깨는 날들이 반복되었고, 고향 교회 예배와 교인들을 피해 서울로 올라와 지내는 주말에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의 낯섦과 이제는 재미있지도 신나지도 않은 그저 가장 싸고 저렴한 곳을 찾고 찾아 예약한 모텔 방 침대가 불면의 밤을 지속하게 했기 때문에, 어디서도 아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프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중에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서울에서 지낼 수 있는 방을 계약했습니다. 거실과 방이 분리되어 있는 1.5룸(One Bed Room)에, TV, 냉장고, 세탁기가 갖춰진 풀 옵션, 관리비에 인터넷, TV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으면서, 말도 안 되는 보증금만 내면 되는 이 집은 3개월씩 월세를 선세로 내며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소위 ‘단기 매물’로, 경매에 올라 새로운 집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부동산이 전주인을 대리해 관리하며 그 사이 월세를 받는 곳입니다. 제가 계약한 곳은 집주인의 요구라며 입주 청소비까지 발생하는 곳이었지만, 이미 크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던 저는, 돈 내는 만큼 청소나 잘해 달라고 말하며 마침내 방을 구하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확정일자는 해줄 수 없지만, 전입신고는 가능한 곳이었고, 보증금 자체가 워낙 저렴한 곳이라 이 매물이 혹 무슨 사기라 하더라도 당장은 제가 아주 크게 손해를 볼 것은 아니기에 그 불확실과 리스크를 감내하며 계약을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 근사해 보이는 이 방은, 3개월마다 계약 연장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그 3개월마다 3개월어치 월세를 한 번에 내야 하는, 불확실과 불안의 집합체 같은 곳입니다. 좋은 곳에 살게 되었지만, 제가 이곳에 살게 된 이유는 다만 반지하라도 2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곳을 계약할 수 있을 만큼의 보증금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저는 일단 3개월어치 서울 거주권을 획득하며 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이사를 합니다. 이사라고 해도 아무런 가구나 세간살이가 없기 때문에, 본가에서는 이불과 -어쩌면 어머니의 압력에 못 이겨-밥솥 정도만 챙겨 새로 계약한 집으로 옮기고, 월요일에 전입 신고를 하고 나면 이제 정말 서울시민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제 글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런 주말이 지나고 나면, 이랬던 한 주를 지나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게 되면, 다음주에 저는 마음을 내려 놓고 아플 수 있을까요? 내일, 토요일이 되어 입주를 끝내고 나도 여전히 불안함 가득할 그 방에서, 저는 이제 앞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준비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나면 고용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직업 교육과 얼마간의 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며, 제가 계획했던 대로 목사 이외의 다른 하나의 직업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알아보고 또 그 기간동안 국가로부터 챙길 수 있고, 모을 수 있는 돈을 찾아봐야 합니다.
텅 빈 집에 침대와 책상, 식탁과 소파 정도는 들여놓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두 가지를 일단 먼저 할 생각인데, 교단에 소속 목사로서 사직 청원서를 제출하는 것과, 개명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련한 이야기는 조금 천천히 나중에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집 앞 카페에 나와 카페 공용 인터넷을 빌어 -이사한지 오래 되지 않은 본가는 아직 인터넷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음-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맛있고 배부르지만 아직은 입이 쓰고 마음도 무거운 식사를 또 하러 가야 합니다.
다음주면 아파도 될까요?
이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면, 그래서 새 집에서 마음껏 와이파이의 수혜를 입게 되면, 그 와중에 아픈 것에 성공하게 되면, 식은 땀이 범벅이 되고 열꽃이 차오른 상태라 하더라도 글을 쓰고 새로운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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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피방 에피소드를 듣고 조용히 응원해오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변화를 감당해야하는 시기에 몸과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 힘들기를 기도합니다. 계속 써주세요. 귀 기울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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