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가 뜨겠지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이 임보라 목사님 2주기가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 목사님께서는 퀴어 사람들의 든든한 앨라이로 퀴어 사람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하셨던 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동환 목사님을 비롯해 윤여군,
남재영, 감리회에서만 벌써 세 분의 목사님이 단지 퀴어 사람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하셨다는 이유로 ‘출교’ 처분을 받으셨습니다. 법적 싸움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승산 없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목회자가 사람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이 그 목사의 직을 박탈하고 공동체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임보라 목사님께서도 교단 밖의 사람들로부터 이단이라는 공격을
받으셨고,
교단 안에서도 임 목사님을 징계하거나 정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이들이 퀴어 사람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퀴어 신학은 한국 주류 교단의 신학적 잣대로 재단해 보더라도
이단적 사상이나,
이단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퀴어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과 부활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과학이 아닌 신앙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지도
않으며, 또 삼위일체 교리를 긍정적으로 적용하고 활용하기도 합니다. 어떤 무시무시하고 괴물 같은 교주가 존재하는 사이비 집단도 아닙니다. 단지, ‘퀴어’ 사람들을 긍정하고 그들을 위한 성서 해석과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그 한 가지 때문에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퀴어 신학을 이단으로 정죄하려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퀴어 신학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부정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퀴어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고,
‘창조’된 것도 아닌 존재들인 것일까요? 모든
사람의 죄와 허물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퀴어 사람들이 그 구원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이단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의 주류 교단들의 주장은 그저 퀴어 사람들이 싫고,
더럽고,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 여기고 있기 때문에 짜 맞춘 옛 중세 시대 교회의
종교 재판과 같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정말 이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퀴어 사람들이 단지 ‘퀴어’이기 때문에 창조 섭리를 거스르고, 구원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들입니다. 그런 복음은 없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가게 되면 목사를 계속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 중 그 어느 곳도 제가 ‘퀴어인 그대로’ 목사일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퀴어라는 것을 숨기면서 단지 생업을 위해 ‘목사’라는 직업을 유지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래저래 참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학부 때 음악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 두었으면,
그걸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기술이 있거나 자격증 하나 따로 취득해 둔 것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 가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막막함도 큽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이런 저를 위한 아이디어나 추천할만한
직업이 있으시다면 트위터나 블루스카이, 인스타그램 DM으로 꼭 알려주세요.)
한국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제가 지금 속해 있는 교단에 목사직을 내려 놓겠다는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가장 많이 실망하겠지만, 그것 역시 한 번은 건너야 할 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속해 있는 교단 몇 년 전부터 또한 퀴어 사람들과
퀴어 앨라이,
동조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와 제재 법안들을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입학과 목사고시 면접 때 마치 십자가 밟기처럼 퀴어인지, 퀴어 사람들에게 동조하고 그들을 옹호하는지 묻고,
확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런 교단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제가 자의로 사직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저도 감리회 세 분 목사님보다 더 혹독한
여론 재판과 비난 가운데 던져지게 될 것이기에,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역시 그런 교단을 빨리
탈출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단에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제가 목사 안수를 받았던 것, 목사로서 사역했던 지난 시간들이 사라지고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교단에 속해 있지 않을 뿐, 여전히 목사일 것이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일을 할 것입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그건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오픈리 퀴어 목사로 교회 사역을 하게 될
사람은 누구,
어떤 분일까요?
임 목사님을 비롯해,
지금 곤란과 곤경 가운데 게시는 감리회 세 분 목사님을 생각하며, 언젠가 누군가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1호 오픈리 퀴어 목사가 되실 분에게 미리 응원과
지지, 연대의 마음을 표합니다. 그런 목사, 그런 교회가 있게 될 날이 빨리 오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 하나로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임 목사님은 몇 년 전에 제가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당시 임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던 섬돌향린교회 예배에 참석해 설교를 듣고 잠시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항상 고마움고 부채감이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많이 놀랐습니다. 한국 교회가 퀴어 사람들을 마귀처럼 취급하고 공격할 때,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들로 여기며
혐오를 여과 없이 나타낼 때, 퀴어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분,
보여주신 분이 임목사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진짜 예수의 복음대로 사역을 하셨고,
예수의 복음대로 살고, 사역하셨던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교단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하는 지금,
임목사님께서 돌아가신 오늘, 그런 임목사님의 사역과 또 감리회 목사님 세 분의 용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분들로 인해, 퀴어 앨라이 목사와 더불어,
퀴어 당사자인 목사가 퀴어 사람들, 퀴어 앨라이 사람들을 비롯해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예배하게 될 날이 빨리 오게 되길, 기도하고 또 기도해 봅니다.
그날을 보게 되기까지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또 글을 써 흔적을 남기고, 글을 통해 다만 몇 사람이라도 퀴어들과 함께하시며,
퀴어들의 편에 서 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래서 퀴어 사람들이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도록, (교회가 아닌)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무지개가 뜨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그 무지개는 뜨겠지요?
의견/문의사항 DM
Bluesky: https://bsky.app/profile/ryaninnj.bsky.social
Twitter: https://twitter.com/newshin1983
*논쟁이나 욕설이 목적이 아닌 문의나 (반가운) 안부 인사를 담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블루스카이 DM은 언제나, 누구나 환영합니다.
돈이 많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Venmo: @RyanJShin
하나은행 18391029397907 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