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꿈에라도 말씀해 주신다면 참 좋으련만,
유학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로, 거짓말하지 않고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목사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이 시대에,
안정적인 월급과 집, 연금을 보장받는 군목이라는 직업은 정말로 좋은 것이었습니다
군생활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장기복무 지원을 했을 때, 선발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성과는 가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야 할 것이고, 한국에서 퀴어이면서 목사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을 위해,
노후 보장을 위해, 눈 딱 감고 최소 20년
(정확히는 19년 6개월-이후부터 연금 수령이 가능함-)을 버티며 교인들을 속이고, 나를 감추면서 일을 계속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패기가 아니라 객기였고,
도전이 아니라 도피였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을 당시 화요모임과 캠퍼스 워십으로,
부흥이라는 앨범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유명했던 선교단체에서 보냈습니다. 겨울이면
이슬람권과 타문화권으로 전도여행을 다니고, 6개월동안 공동생활을 하는 선교훈련도 따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그 곳 또한,
당연히 퀴어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동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확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내가 믿고, 배우고, 알고 있는 예수의 복음은
퀴어 사람들을 미워하고, 저주하며, 몰아내는 복음이 아니라 그들도 다르지
않으며, 그들도 존재 자체로 충분히 자격이 있고, 그래서 예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인데, 그게 정말이라면, 내 믿음과 확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주께서 전과 같이, 이제도, 앞으로도 동일하게 내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고, 길을 보여 주실 것이고, 말씀하며 음성을 들려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공동체,
그 선교 단체를 비롯한 한국 교회는 내 믿음과 확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내 삶으로 오히려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내가 배운 방법대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자신감은 떨어지는 와중에 영어도 늘지 않았습니다.
펜데믹이 왔고, 재정은 점점 궁핍해지는 와중에, 담임을 맡게 된 교회 공동체도 성장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단절되고,
외국인으로서 (합법적인) 신분 유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퀴어인 것이 잘못이라 이렇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이 그걸 깨닫게 하시려고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폐허가
되게 하신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의 실패는 오로지 저의 몫입니다. 제가 게이라서 주께서 제가 하는 모든 일을 망하게
하신 거라면 미국에선 이미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다른 퀴어 당사자인 목회자들, 신학생들,
교수들은 어떻게 그런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저의 실패는 제가 게이이기
때문이 아닌 저의 부족함, 저의 게으름, 저의 불운 덕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로 아는 것과 그것이 가슴으로 내려와 삶으로 인지되는 것 사이에는 큰 온도차와 시간 차이가 존재합니다.
착하고 충실한 한국 교회의 가르침에 학습된 저는 게이, 퀴어 사람이면서 그리스도인이고,
목사인 저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쉽고 불편하지 않았지만, 삶의 자리가 어렵고
힘들어질 때, 스멀스멀, 바로 저 생각과 정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어쩌면 저를 비롯해 많은 한국인 퀴어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두려움과
그런 실패감에 자신을 내어주며 오늘도 신앙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저의 삶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의 불행은, 우리의 불행과 불운은 우리가 퀴어 사람이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고,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시며,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가르치지도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를 여전히 가지고,
저는 지금도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제가 헤매고 있는 우울과 무기력의 숲속에서,
세미하나 여전히 말씀하고 계실 하나님, 희미하지만 지금도 비추며 길을 인도하고 계실
하나님의 빛을 찾으며 저의 시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의 삶의 결론이 어떻게 맺어질지 알 수 없으나,
오늘도 꿈에라도 말씀해주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제 시간을 살아내는 것,
그렇게 또 하루를 감당하려 합니다.
그 믿음으로 꿈틀거리며 간신히 이 글을 써 보고,
여전히 꿈을 놓지 않아보고, 그래도 계속 숨을 이어갑니다. 이러다 보면 내일을 또 새로운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있던 것, 놓치고 있던 것 하지 않고 있던 것과 다시 해야 하는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해 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오늘은 2024년 추수감사주일, 교회력으로는 2024년 마지막 주가
되는 주일,
설교 준비를 마치고 그 밤부터 쓰기 시작한 이 글을 아침을 열며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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